지난해 필리핀으로 어학연수 갔다가 최근 귀국한 대학생 최모(25) 씨. 최 씨는 귀국을 앞둔 지난달 말쯤 필리핀에서 어머니의 휴대전화로 안부전화를 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3초 정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줬음에도 이를 제대로 듣지 못한 어머니가 안내원의 "전화를 받으시겠습니까?"라는 물음에 다짜고짜 전화를 끊어버린 것. 다시 집으로 전화를 걸어 어머니와 통화를 한 최 씨는 '전화 사기' 때문에 속을까봐 겁이 나 전화를 끊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최 씨는 "지난 1년동안 해외에 있어 몰랐는데 인터넷으로 뉴스기사를 검색한 뒤에야 신종범죄가 들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젠 해외에서 마음 놓고 집에 전화도 못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전화사기(일명 보이스피싱) 사건이 잇따르면서 그 여파가 생활 곳곳으로 미치고 있다.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전화가 오면 그냥 끊어버리는 게 생활 습관처럼 자리 잡은 것. 그러나 일반 시민들이 '낯선 전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경찰, 검찰은 물론 금융기관, 카드회사, 국세청 등에서는 민원인이나 사건관계인과 통화를 할때 장시간 확인절차를 거치는 '해프닝'까지 벌어져 진땀을 흘리고 있다.
경북 의성의 한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김모(28) 씨도 최근 보이스피싱 전화사기의 역풍 때문에 난감한 경우를 당했다. 근무지역 주민들이 '누구네 집 누구'라면 다 알 정도로 친인척 관계로 연결돼 있는데다 노인이 많아 금융기관이라고 하면 주민번호까지 쉽게 알려줄 정도였는데 최근 들어선 전화를 하면 '다시 전화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 김 씨는 "대출금 이자, 보험료 납부 기일 확인 등 때문에 고객들에게 자주 전화를 하는데 요즘은 전화사기범으로 의심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심지어 어느 금융기관인지, 담당자가 누군지 등을 꼼꼼하게 확인한 뒤 아들이나 딸에게 다시 물어보고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도 대표적인 전화사기 피해자다. "XX경찰서 XXX형사인데요."라고 말을 하기 무섭게 전화를 끊거나 심지어 "네가 경찰이면 나는 청와대다."라는 식의 황당한 답변을 듣는 경우도 적잖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지만 전화사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확인 또 확인'을 거쳐야 한다는 게 경찰의 얘기. 배기명 성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전화사기 용의자 취급을 받은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사기 피해를 막으려면 더욱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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