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내놓은 국가 영어능력 평가시험 도입 계획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토플과 토익 등 해외 영어시험을 본 인원이 205만 명에 이르는 데 비해 텝스 등 국내 영어시험 응시 인원은 63만여 명(24%)에 불과한 현실을 감안하면 늦었지만 반갑다는 이야기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 반응은 우려투성이다. 현실성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고, 민간에서 여러 곳이 나서도 사실상 실패한 것을 국가가 다시 나서는 건 중복 투자가 아니냐는 비판도 적잖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수능시험 대체 가능성까지 거론돼 지극히 민감한 문제인 만큼 문제점과 효율적인 대안 등에 대한 생각을 꼼꼼하게 정리해 두어야 한다.
▶계획의 주요 내용
교육부의 계획은 두 가지다. 첫째는 한국영어능력평가재단을 설립해 국가가 지원하는 영어능력 평가시험을 도입하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2009년 학생용 시험 시행에 이어 2011년 일반용을 시행해 국가기관이나 기업 등에서 요구하는 결과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수능까지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영어시험 수요가 급증한 데 비해 국내 영어시험 응시율이 낮아 국부 유출이 심각한데다 초·중등 학생들에게 적합한 영어시험이 없어서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이번 계획을 통해 ▷학교 영어교육의 방향에 대한 기준 제시 ▷해외개발 영어시험 의존도 약화 ▷국내 영어교육 및 평가 연구역량 제고 등을 꾀한다고 밝혔다.(교육부 보도자료)
▶2년 뒤 시행 현실성 있나
현재 토플과 토익을 주관하는 미국 ETS사의 경우 전체 직원이 3천 명에 이르는 데다 평가 관련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 인력만 7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정도의 전문성을 갖추기란 요원한 일이지만 최소한의 신뢰도라도 갖기 위해서는 2년이라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문제 제기가 많다.
'일본의 경우 국가공인 실용영어 검증시험 스텝(STEP)을 1963년부터 시행했지만 국제 인증을 받기까지는 30년 이상이 걸렸다지 않은가. 그리고 서울대가 개발한 텝스(TEPS)는 7년간의 준비 및 제작기간과 8년간의 시행과정을 통해 비로소 그 공신력을 검증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새로 개발하는 시험도 개발과 신뢰도 획득에 그 정도의 기간이 소요될 텐데, 거기에 따른 비용과 인력의 소모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신문 칼럼)
당연히 신중론이 쏟아지고 있다. '기관 설립, 평가 틀 개발, 시범을 거쳐 시행까지 2년 안에 다 해결하겠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평가문제의 신뢰성 검증에만 2년은 걸리는 게 보통이다. 일정에 쫓겨 성급하게 추진, 졸속 평가가 된다면 국내외 시장에서 외면당할 수 있다. 특히 평가항목 중 말하기는 국내 공인 영어시험에선 시도한 적이 없는 신세계다. 시일에 얽매이지 않는 철저한 준비, 신뢰성 확보가 우선이다.'(신문 사설)
▶실효성도 의문
애써 국가 주도 영어능력 평가시험을 시행한다고 해도 이를 활용해줘야 할 기관, 기업 등이 외면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특히 성공의 가늠자가 되는 외국 대학들의 인정을 받기란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토익, 토플에 견줄 만한 국제적 공신력을 얻지 못하면 허사가 되기 쉽다. 서울대가 개발한 텝스 등 국내 공인 영어시험이 개발 10년이 다 되도록 외국 대학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게 이런 이유다. 국제적 공인을 얻을 만한 객관적인 수준 유지는 필수다.'(신문 사설)
교육부는 일본의 경우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600개 대학과 고교에서 문부성 후원 영어인증시험 결과를 인정한다며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통해 해외 인증을 따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일본조차 인증해준 학교들은 토플 점수 없이 갈 수 있거나 일본 학생 유치를 위해 기준을 낮춘 것이라는 지적을 받는데 이제 시작하는 우리 경우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다른 부작용들도 쉽게 점칠 수 있다. '새로운 영어평가시험을 시행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 가운데 하나는 거기에 대비한 영어학원과 과외의 기하급수적 증가와 새로운 대규모 사교육 시장의 형성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그동안 어렵사리 만들어 놓은 국내 영어평가시험들이 일시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신문 칼럼)
▶바람직한 방향은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해외 영어시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현실은 분명 개선돼야 하고, 국내 시험 개발의 필요성은 크다. 문제는 어떤 방법이 현실적이고 실효성을 가질 것인가이다. 교육부의 계획대로 진행할 경우 보다 신중하고 폭넓게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평가 자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시험의 경우 시험의 주 수요층인 대학생 및 일반 성인들, 대기업을 비롯한 회사들이 믿고 사용할 수 있도록 타당도, 신뢰도, 객관성을 구비한 문항들이 개발되어야할 것이다.'(신문 칼럼)
가능한 빨리 국제 공인을 받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충고도 들린다. 미국이나 영국의 영어능력 시험 평가기관과 협조하고 도움을 구할 필요가 있다거나, 외국 전문기관과 국내 운영기관의 자문·협조체제를 구축해 시행착오를 극소화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현재 시험 시행기관 쪽에서는 기존 시험 통합 방안도 조심스레 나온다. '예컨대 국제적 지명도도 있고 상당한 국내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텝스를 서울대에서 독립시킨 후, 국내의 다른 시험 시행기관들과 합동으로 새로운 통합시험을 만드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자체 개발 영어시험들인 일본의 스텝과 중국의 세트(CET) 관계자들을 만나 상호인정 협약과 ETS와의 협상 가능성을 논의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신문 칼럼)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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