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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도, 이름도 사랑스런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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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주지 않아도 길가에서, 계곡에서 혹은 물 흐르는 바위틈을 비집고 스스로 최선을 다해 자신을 드러내는 작은 존재들이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된 여름 야생화들이 그 주인공이다.

가야산 백운동 가는 도로변에 흐드러지게 핀 연보라 빛 벌개미취는 한여름 잠깐 부는 소슬바람에도 어쩔 줄 몰라 연신 가녀린 몸짓을 흔들어대고 비슬산 계곡 물가에 홀로 핀 분홍 물봉선은 내리쬐는 한 낮 뙤약볕에 지친 듯 꽃잎을 접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이름이 예뻐 자꾸 되뇌게 하는 보랏빛 솔채꽃은 대구 수목원을 찾은 꿀벌의 집적거림이 싫은 듯 얼굴을 돌리고 흰 꽃이 탐스런 구릿대는 그 옆에서 모른 척 딴전을 피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토종 들풀과 들꽃 중 관상가치가 있는 꽃을 피우는 야생화는 약 1천여종. 이 중 70%이상이 여름(6월~9월)에 꽃을 피운다. 이 때문에 요즘 산과 들엔 이름 모르는 야생화들을 지천으로 볼 수 있다.

몰랐을 땐 잡꽃에 불과했지만 알면 가슴속에 담아오게 되는 야생화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얼핏 보면 헷갈려요

흔히 도로변이나 시골 담장 한 켠에 핀 국화모양의 닮은 꽃을 '들국화'로 통칭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들국화란 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 들어 한적한 교외 길가에 많이 보이는 자생적인 꽃은 주로 가새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는 코스모스보다 작고 가늘며 연보라색을 띠는 꽃잎이 방사형으로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꽃의 모양과 색이 가새쑥부쟁이와 흡사해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야생화로는 벌개미취가 있다. 벌개미취도 길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생화로 가새쑥부쟁이보다 꽃잎이 크고 진하다.

노란 꽃망울이 크고 아름다워 주로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 원추리와 나리꽃도 헷갈리는 야생화들 중 하나.

하지만 원추리는 백합처럼 깔대기 모양의 꽃이 위로 향해 피며 키는 약 1m쯤 자라는 반면 나리꽃은 땅을 보고 피며 키는 약 70cm정도 자란다. 이 둘은 꽃잎도 똑같이 6갈래로 피지만 나리꽃엔 자주색 반점이 있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전국 산지나 골짜기, 물가에서 볼 수 있는 다년초인 어수리와 구릿대도 흰 꽃에 모양새가 비슷하다. 어수리는 흰 꽃이 우산처럼 활짝 펴져 있고 구릿대는 둥글게 꽃이 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잎모양새도 다르다.

마타리와 뚝갈도 닮은 꼴이지만 마타리는 노란 꽃이, 뚝갈은 흰 꽃이 핀다. 특히 마타리는 냄새가 고약해 '폐장(창자가 썩는 냄새)'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연분홍의 메꽃은 나팔꽃과 유사하다.

#잎에서 특유의 향이 나요

둑이나 습지에 잘 자라는 박하가 대표적인 방향성 야생화이다. 잎을 따 비빈 다음 향을 맡으면 청량감이 몸 안에 밀려온다. 민간에 방아 잎으로 알려진 배초향도 고기의 비린 맛을 없앨 때 자주 이용된다. 꽃은 자주색이다.

적갈색의 꽃이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닮은 오이풀은 잎을 비비면 정말 오이향이 그득해진다. 줄기 전체에 털이 숭숭 난 분홍색의 층층이꽃도 방향성이다.

#생긴 특징, 냄새에 따라 불려요

개화 전에 핀 꽃대가 붓 모양을 닮은 붓꽃은 자주 빛 꽃이 고와 관상용으로 인기를 끌며 이 맘 때쯤 들녘에 흔한 쥐손이풀은 5개의 아주 작은 흰 꽃잎이 마치 쥐의 발을 닮은꼴이다.

꽃잎 뒤 꼬부라진 부분이 매의 발톱처럼 보이는 매발톱꽃은 꽃받침이 또 하나의 꽃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름만큼 귀여운 노란 꽃이 피는 애기똥풀은 줄기를 꺾어 나오는 노란 점액이 아기의 똥 색깔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뿌리에서 노루 오줌냄새가 나는 노루오줌은 길가나 습지에서 흔히 보인다.

#삶의 애환과 정서가 녹아 있어요

곤궁하던 시절, 가마솥 뚜껑을 열고 밥맛을 보려던 며느리를 몹시 미워하던 시어머니가 이를 심하게 꾸짖자 슬픔에 잠겨 죽은 며느리의 한을 품은 며느리밥풀꽃은 분홍꽃잎 사이로 난 하얀 수술이 마치 밥풀모양을 하고 있다. 시어머니의 타박에 놀란 듯 밥알은 채 목에 넘어가지도 못하고 꽃술로 맺혀 있다.

덩굴야생화인 며느리밑씻개는 시집온 며느리를 못마땅해 했던 시아버지의 심술이 깃들어 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 줄기에 작은 가시가 수없이 돋은 며느리밑씻개를 볼일 후에 쓰라고 던져 주었다는 것이다. 긴 줄기에 마디마다 깨알 같은 흰 꽃이 돋아 있다.

또 다른 덩굴야생화인 사위질빵은 장모의 사랑이 배어난다. 처가에 들른 사위를 위해 필요한 물건을 메고 가라고 길가에 난 덩굴을 뜯어 멜빵대용으로 사용하게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줄기를 당겨보니 가히 멜빵으로 쓸 만큼 질기다.

◇대구 인근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곳

▩대구 수목원=전국 산야에서 자생하는 약 100여종의 야생화를 수집, 전시하고 있다. 주황색의 참나리, 노랑색의 원추리와 짚신나물, 하얀 구릿대, 보라색의 무릇, 녹색의 쇠무릎풀 등 여름에 개화하는 우리 꽃들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비슬산 자연 휴양림=계곡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계류와 숲 사이로 뱀무, 물봉선, 물레나물 등 생김새가 귀엽고 우리 정서를 잘 드러내는 다양한 여름 야생화들이 보일 듯 말 듯 꽃을 피우고 있다.

▩가야산 야생화 식물원=지난해 6월 개관한 야생화 전문 식물원.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천여평 규모의 2층 야생화 학습원에는 멸종위기 2급식물인 대청부채,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섬시호 등 희귀야생화를 비롯해 가야산에 자생하는 야생화 600여종이 식재돼 있다. 최근 개화 전성기를 맞은 벌개미취와 맥문동, 뽀족한 꽃대 끝이 구부러진 큰산꼬리풀 등이 볼거리이다.

도움말.이정웅 숲 해설가, 유성태 대구수목원 임업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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