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권이나 초기에는 개혁과 혁신을 외친다. 그러나 지속하기는 어렵다. 혁신은 '기득권 포기'라는 자기 否定(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부터 변하지 않고 남을 변화시키겠다는 발상으로는 혁신할 수 없다. 엄격한 자기 省察(성찰) 없이 '창조적 파괴'를 바란다면 벌집 쑤셔놓은 '무질서'에 이를 뿐이다. 이처럼 創業(창업)보다 守成(수성)이 어려운 법이다.
이미 국민의 귀에 못이 박인 '혁신'이라는 화두가 새삼 떠오르는 것은 엊그제 김천 혁신도시 기공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참석, 경북의 '드림 밸리'로 말뚝을 박아놓겠다는 다짐은 지역에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혁신 주체의 正體性(정체성)을 보면 마음은 금세 어두워진다. 지금 혁신을 부르짖고 있는 청와대는 권력형 비리에 깊숙이 빠져있다. 그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실타래처럼 복잡하다. 개혁에 앞장서야할 공공부문은 갈수록 비대해져 '공룡화'되고 있다.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느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개혁 주체는 적어도 자기 淨化(정화)는 돼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다산 정약용이 일곱 살 때 山(산)이라는 제목으로 지은 시가 있다. 小山蔽大山(소산폐대산) 遠近地不同(원근지부동).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가깝고 먼 곳이 같지 않음이라"는 뜻이다. 다산은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제법 문자를 알았다'고 자평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어린 소년 작품치고는 곱씹을수록 맛이 새롭다.
덩치가 작은 산이 어떻게 큰 산을 가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바로 멀고 가까운 차이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물리 법칙이다. 이 단순한 진리가 왜 지금 새삼 돋보이는가.
권력이 눈앞에 어른거리면 멀리 있는 큰 산을 보기 어렵다. 주변을 맴도는 측근들의 '작은 산'에 가려 뒤에 있는 '큰 산'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은 산들은 권력에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큰 산을 가리게 되고 권력자는 멀리 있는 큰 산의 존재를 곧 잊어버린다. 마침내 권력자는 작은 산을 비호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것이다.
혁신하려면 주체세력부터 혁신돼야 한다. 김천 혁신도시의 말뚝이 뽑히지 않고 뿌리내리길 바랄 뿐이다.
윤주태 중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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