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기행] 나에게는 행동의 연속이 있을 따름 - 이육사①

아직 그의 묘소의 사진을 준비하지 못했다. / 너무 깊은 산속 / 지금은 밤이면 소쩍새소리 가득하겠지. // 그의 태어난 집은 안동시 태화동 MBC 근처의 주택가에 있다. / 들르는 사람도 많지 않고 / 도시 속의 외로움만 느껴진다.(이육사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날, 경명문학기행단 교사들은 독서 연구회 학생들과 함께 이육사 생가를 찾았다. 식민지시대 대표적 민족시인 이육사의 생가는 경북 안동시 태화동에 있다. 그리 넓지도 않는 지방도시 복판에 있는데도 주소만 달랑 들고 찾아가는 길이 쉽지는 않다. 길 입구는 물론 대문 밖에도 안내 표지가 전혀 없으며 사람들의 관심도 거의 없는 듯하다. 생가를 찾고 나서 다시 놀란 것은 바로 이웃길이나 아랫길에서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는데도 정확하게 이 집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데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이 초라한 대문 앞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대문 안에는 먼저 들어간 아이들의 소리로 시끄럽다.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내판이 보인다. 40명 가까운 아이들이 마당에 들어서자 빈 공간이 없다. 정말 좁은 뜰. 이슬비까지 내려 풍경은 더욱 초라하다. 생가도 아닌 생가, 사실 이육사가 태어난 곳은 여기가 아니다. 태어난 집은 맞지만 태어난 장소는 여기가 아니다. 이 집은 원래 생가가 있던 곳에서 1976년 이곳으로 옮겼다. 이육사가 태어난 곳은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이다. 그런데 그 원촌리가 안동댐의 범람으로 물에 잠겼다. 수몰의 위험에서 생가를 살리고자 부리나케 옮긴 곳이 바로 이곳이다. 임시로 옮긴 모양인데 벌써 30년이 지났다.

이육사는 1904년 4월 4일에 태어났다. 1943년 일본 형사대에 붙잡혀 해방을 일 년 남짓 앞둔 1944년 1월 북경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무려 열일곱 번이나 옥살이를 했다. 그야말로 그는 '매운 계절의 채찍'과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서 평생을 살았던 셈이다. 2004년, 육사 탄신 100년이 되는 해, 생가터가 있었던 도산면 원촌리에 이육사 기념관을 지어 7월 개관했는데 그때 이 생가를 생가터에 복원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육사 생가를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안동호로 향했다.

안동댐 주변에는 안동 민속촌과 안동 민속박물관, 이육사 시비,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장, 안동호 등이 몰려 있어, 제대로 돌아보자면 한나절은 족히 걸린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안동 민속박물관을 거쳐 이육사 시비 앞에 도착했다. 아이들과 함께 시비에 새겨진 를 함께 읽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는 소리,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한' 냄새, 멀리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말발굽 소리가 내 코와 귀를 어지럽게 했다. 아이들과 함께 이육사의 의 한 대목을 읽었다.

나는 이 가을에도 아예 유언을 쓰려고는 하지 않소. 다만 나에게는 행동의 연속만이 있을 따름이오, 행동은 말이 아니고, 나에게는 시를 생각한다는 것도 행동이 되는 까닭이오. 그런데 그 행동이란 것이 있기 위해서는 나에게 무한히 너른 공간이 필요로 되어야 하련마는 숫벼룩이 끊어 앉을 만한 땅도 가지지 못한 나라, 그런 화려한 팔자를 가지지 못한 덕에 나는 방안에서 혼자 곰처럼 뒹굴어 보는 것이오. (이육사, 부분)

아예 유언조차 쓰지 않고 행동으로만 살아가려고 했던 이육사가 엄한 목소리로 일상 속에서 꾸물거리며 살아가는 내 삶의 나태함을 꾸짖는 것 같아 부끄러움에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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