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에게
이태수
새야 너는 좋겠네. 길 없는 길이 없어서,
새 길을 닦거나 포장을 하지 않아도,
가다가 서다가 하지 않아도 되니, 정말 좋겠네.
높이 날아오를 때만 잠시 하늘을 빌렸다가
되돌려주기만 하니까, 정말 좋겠네.
길 위에서 자주자주 길을 잃고, 길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길이 너무나 많은 길 위에서
나는 철없이 꿈길을 가는 아이처럼
옥빛 하늘 멀리 날아오르는 네가 부럽네.
길 없는 길이 너무 많은 네가 정말 부럽네.
지금은 사라진 '옥천집', 동문동 동아백화점 동편 골목에 박혀 있던 막걸리 집. 쭈그러든 양은 주전자와 생고구마 안주, 자욱한 담배연기와 왁자한 소음 속에서 열띤 목소리로 시와 삶을 나누던 1970년대의 낡은 풍경. 그 집 벽에 걸려 있던 시화, '옥천집에서'가 생각나네. 당시 시인은 20대 후반을 힘겹게 통과하는 중이었고, 바로 아래 세대인 우리는 새 둥지에 숨긴 새알 훔치듯 선배들의 시를 훔치려 했지.
시가 대체 무엇이건대 畢生(필생)과 바꾸려 했던가. 그 치기 어린 젊은 시절은 지나가고, 시도 그 화려하던 광휘를 잃어버리고, 정신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는데. 이 막막한 현실 앞에서 지나온 길을 되짚어보네. 이 짧은 시에 박혀 있는 열한 번의 '길'이라는 단어. '길 없는 길이 너무나 많은' 이 '옥빛 하늘' 아래 우리는 다만 우두커니 서서….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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