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 손가락 → 동작'
좁고 어두운 욕실, 낡은 세탁기 위에 붙어있는 종이쪽지. 늘 세탁기로 빨래 돌리는 법을 잊어버리는 할머니를 위해 내가 적어놓은 쪽지. 형광색의 펜으로 적어놓은 그 쪽지는 너무나 크고 너무나 또렷한 글씨체여서 못 알아보려야 못 알아볼 수가 없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쪽지는 욕실의 습기를 머금어 쭈글쭈글해졌다. 마치 할머니의 손등처럼.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1997년의 초봄, 할머니와의 다툼 끝에 엄마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타지에서 돈을 버는 아빠를 빼고 이제 실질적인 가족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은 할머니와 나, 그리고 동생, 이렇게 세 명이 되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우리 남매의 '엄마'가 되었다. 침침한 눈으로 알림장을 확인하고, 떨리는 손으로 가정통신란에 글자를 적었고, 면 보건소에서 예방 접종도 했다. 여느 엄마의 하루와 다름없이 우리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이불도 개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깨끗이 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남매의 '엄마'는 많이 늙었다는 것. 세 끼를 찬밥과 신 김치 몇 조각으로 때우는, 자신을 너무 돌보지 않는 '엄마'였다는 것. 아직도 소반에 반찬 몇 가지 없이 식사하시는 할머니는 시월의 새벽 공기처럼 쓸쓸한 삶을 사신다. 엉덩이 시린 마루에 앉아 조용히 담배를 태우는 할머니의 모습도, 따신 물 안나오는 싱크대에서 찬 물로 설거지하는 할머니의 모습도, 죽담에 기대어 낮잠 자는 강아지를 보는 할머니의 모습도…. 모든 것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어릴 적에는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왜 우리 집은 운동회 때 같이 달릴 수 있는 가족도 없고, 학교에서 내주는 학부모회의 안내 종이를 갖다 줄 사람도 없고, 내게 예쁜 옷과 예쁜 신발만 골라 입혀 줄 사람이 없는지 생각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오라는 말에, 동네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떼어 갔더니 담임선생님께서 날 조용히 복도로 불러내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소연아, 넌 왜 어머니가 안 계시니? 부모님께서 이혼하셨니?"
나는 그 물음에 알 수 없는 오기가 생겨서
"네. 그런데 곧 다시 결혼하실 것 같아요. 화해하셨거든요."
라고 말해버렸다. 그 말을 한 것이 부모님의 이혼 4년이 되는 해였다. 물론 선생님께 드린 말씀은 거짓말이었고 그 날 집에 가서 할머니와 동생 몰래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남의 입으로 내 처지를 처음 실감했던 순간이었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당시의 나는 제멋대로의 말썽꾸러기였는데, 할머니의 가슴이 찢어지셨을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남의 집 자식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자라게 하고 싶어 무던히도 애쓰셨을 것을….
아직도 경북 영천시 임고면 매호2리에는 나의 '엄마'가 산다. 아직도 동생에게 늘 따뜻한 쌀밥과 계란 프라이를 부쳐주는 우리 남매의 '엄마'가 있다. 쭈글쭈글한 종이쪽지처럼 늙어버린 천사의 집이 있다.
박소연 /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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