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詩가 있는 가을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 가
  • 가

'무서리 내린 새벽/ 까치 한 마리 공중에 뜨네/ 저도 늦가을 발이 시린가 보네'라며 안도현 시인이 한 폭의 풍경을 그려놓듯 늦가을을 간명하게 노래했다. 어둠을 재우고 들어선 이른아침의 이마가 서늘하다 못해 한기마저 느끼게 하는 늦은 가을. 충일과 공허가 묘하게 교차하는 계절이다.

은행나무에서 태어난 어린 잎들이 오므렸던 손아귀를 펼쳐 푸른 손 내미는 것도 볼 새 없이 제 발등만 보며 바삐 걸어온 사람이라면 가을을 맞는 감회가 더욱 절실하리라. 문득 고개 들어 어느새 노랗게 출렁이는 단풍나무와 눈이 마주쳤을 땐 탄성과 탄식의 희비가 교차할 것이다.

이치의 여신 테미스가 세상의 이치를 빠짐없이 헤아려 살펴준다 하더라도 같은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사계절의 자리 바꾸기를 바라보는 자세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수용하든 부정적으로 내치든 오로지 그 사람의 몫이다.

한번 흘러간 물줄기는 영원히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지만, 계절이 오고감은 때가 되어 우리가 밥숟가락을 들었다 놓는 것과 같지 않을까.

여행을 떠나는 가을 따라 단풍구경을 갔다가 마음에 내려앉은 낙엽 무더기를 끌어안고 돌아와 어쩔 줄 몰라 하던 한 사람은 의중도 물어보지 않고 함부로 마음에 들어앉은 가을과 한동안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할 것같다고 했다.

얼마 전 친구가 신문에서 스크랩하여 손수 만들었다며 제법 두툼한 시집 한 권을 내게 선물했다. 매일 신문을 뒤적이며 보물찾기하듯 한 편씩의 시를 낚았을 정성을 생각하며 그 시집의 문턱을 넘었을 때, 벌써 이웃을 만들어 살아가던 시편들이 마치 새로 온 이웃을 맞이하듯 여기저기서 나를 반겨주었다.

사는 일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눈 깜짝할 사이라 해도 정해진 과녁까지 날아가는 동안엔 꽃길을 지나야 하고 거센 강줄기도 거슬러야 하는가 하면 팽팽한 창공도 가로질러야 한다며 말해주고 있었다. 까치가 신발도 없이 시린 발끝을 모아 날아오른 텅 빈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 내가 가을의 등에 기대어 세상에 하나뿐인 시집을 읽으며 미완의 그림을 완성시켜 본다.

윤미전(시인·대구한의대학교 겸임교수)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서부전선 DMZ에서 발생한 지뢰 추정 폭발 사고와 관련하여 군 당국이 유엔군사령부의 신속한 현장조사 요청을 거절했다고 ...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2026에서는 (주)덕산제이엠로보틱스의 최첨단 로봇들이 탈과 한복을 착용하고 공연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추석 연휴인 26일 부산역에서 무궁화호 기관차 바퀴가 궤도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승객이 없어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한국철도공사는 사...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이송 사실을 공개하며 한국 정부와 외교적 갈등이 불거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비공식 합..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