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동행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의 교유는 정신세계를 풍요롭고 안정되게 만들어 준다. 설혹 자주 왕래할 수 없다 하더라도 마치 맑은 시냇물에 놓아둔 징검다리처럼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몸을 낮춘 시냇물이 흐르고 흘러 넉넉한 강물이 되고 끝내 대지를 감싸는 대양을 이루게 되듯, 사람간의 관계 또한 시간과 더불어 서로의 가슴에 보이지 않는 큰 탑을 하나 쌓아가는 것 다름 아닐 것이다.

황국화가 배시시 웃으며 무슨 말을 건네오던 수십여 해 가까이 내겐 세월의 탑을 함께 쌓아 올렸던 사람들이 있다. 이립(而立)에서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분까지 연령대가 다양하여 화목한 대가족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그렇지만 흔히 세대 간에 느끼는 간극은 없다.

삶의 궤적이 다른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과 버무려져 진국의 맛을 만들며 잘 발효된 것은 서로를 격려하는 배려와 존중의 물줄기가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잔잔히 흐르고 있어 소통에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혈육들이 이처럼 다정하고 허심탄회할 수 있을까.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이 이심전심으로 때론 그늘이 되어주고 때론 우산이 되어주며 서로의 인생에 동행이 되었다.

얼굴만 맞대면 격의 없이 오가는 대화에 깨소금 맛 같은 기쁨들이 심심찮게 여기저기서 폭죽으로 터져 나온다. 이때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웃음치료사가 되고 또 치유를 받게 된다. 그들과 몇 시간 마주 앉아있다 보면 앓던 이가 빠지듯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 받곤 한다.

한 달에 한번 그곳으로 가면 비둘기들이 모이를 찾아 모여들듯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다. 무한경쟁과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도전으로 지쳐있었던 표정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설 즈음이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힘든 세상 내가 이 힘으로 산다"며 웃음 가득한 고백을 하는 것이다.

며칠 전 마음의 탑에 돌 하나 더 쌓아 올리려고 우리들은 화양구곡을 찾았다.

'푸른 물은 성난 듯 소리쳐 흐르고/ 청산은 찡그려 말이 없구나/ 산수의 깊은 뜻을 생각하노니/ 세파에 연연함을 저어하노라' 우암 송시열이 말년에 정계를 은퇴하고 화양구곡에 은거하며 지은 시 한 수가 옛적 우암의 눈길이 자주 머물렀을 금사담을 맴돌다가 내 가슴으로 흘러왔다.

일행들과 우암을 얘기하며 돌아오던 그 길에서 문득 우암이 시정신을 통해 내게 던진 화두의 깊은 뜻을 헤아리며 이들과 오래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았다.

윤미전(시인·대구한의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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