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역사는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깊이 새겨볼수록 답을 내기가 어려운 문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변경지역에 투기를 해서 재산을 축적했지만 언제나 검소한 농부로 기억된다. 성적 농담을 진하게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으나 그의 이미지는 진지함과 엄숙함으로 포장되고 있다. 토머스 제퍼슨은 훌륭한 대통령으로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무수한 섹스 스캔들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의 전형이었다. 20세기의 신화, 존 케네디 대통령 역시 부정선거의 족쇄를 차고 있다. 1960년 닉슨과의 대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것은 부정선거의 결과였다. 텍사스에서는 유권자 수보다 투표자가 많았고, 시카고에서는 공동묘지 유권자(?)들이 케네디를 뽑았다.
미국의 인권영웅 마틴 루터 킹은 인권운동단체에 들어오는 돈으로 매춘을 즐겼다. 논문을 표절해 박사학위를 받고, 연설문도 베낀 것이 많다.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라는 그 유명한 인권연설의 감동적 결말은 케어리라는 흑인 목사의 것이라 한다. 인도의 성인으로 추앙되는 마하트마 간디. 그에게도 어두운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18, 19세의 어린 처녀들과 벌거벗고 잠을 자는 습관이 알려진 뒤 브라마차리아(정화서약) 시험의 방식이라고 변명했다. 믿거나 말거나일지 모르지만 모두 책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결점 없는 인간은 없다. 위인으로 알려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약간의 치명적 결점들이 그들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역사적 인물이 이런 형편이라면 권력 불나방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완벽한 도덕성과 진실을 바라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독재자들이 던진 경구들에서 그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레닌은 "거짓말도 자주 하면 진실이 된다"고 했다. 히틀러는 "많은 사람들이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잘 속는다"는 금언을 남겼다.
제17대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인물, 정책, 공약 등 국가적 담론은 실종되고 모든 시선이 BBK의 김경준·에리카 김 남매와 그 일가에게로 모아지고 있다. 사기와 위조, 횡령 등 화려한 범죄전력을 가진 두 사람의 입만 쳐다보는 대선정국이 연출되고 있다. 꼬리털 하나가 몸통을 흔드는 꼴이다. 우리 정치권의 부도덕과 무소신, 무능 때문이다. 잔털 하나에 덜미가 잡힌 쪽이나, 그 잔털을 움직여 몸통을 뒤집으려는 쪽이나 오십보백보다. 넌덜머리나는 한국적 대선 풍토병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렇게 고민할 일도 아니다. 과거 대통령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비관에 빠질 일도 없다. 금전에 눈먼 보통사람, 성 추문을 달고 다닌 통치 낙제생, 거짓말과 밀거래의 다중인격자, 궤변으로 포장된 천방지축…. 이보다 더 잘못 뽑을 수 있을까. 최소한 더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다음 대통령도 이런 수준에서 뽑혀야 정상이다. 나라와 정치의 틀이 잡히고, 국민이 달라지지 않는 한 존경받는 대통령을 뽑기는 어렵다.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가 다투는 지금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명박은 돈, 품행, 이회창은 변절과 무능, 정동영은 국정파탄의 원죄가 있다. 도덕적 결함과 통치능력 결함,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할지, 어느 쪽이 더 큰 허물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귀 소문의 도덕성만 따져서 안 되겠다는 반성, 즉 김대업 효과도 겹쳐진다. 이래저래 복잡하다.
역사가 말해주듯 대통령 후보에게 통치자의 모든 자질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가문, 학벌, 인물, 직업, 돈, 건강, 성격을 두루 갖춘 혼처를 찾겠다는 어리석음과 같다. 거짓말로 꾸며대거나 위선이 아니고서는 그런 조건을 만들 수 없다. 우리에게는 그 중 두세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 여유밖에 없다. 그것이 진실이다.
차기정부의 주요 과제는 크게 4가지다. 일자리 확보, 안보불안 해소, 교육정상화, 공공개혁이다. 이들 과제는 중국과 일본에 끼여 질식할지도 모를 나라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느냐는 화두와 엮여 있다. 국가의 정신 건강성을 높이는 문화부흥도 절실하지만 과욕일 것 같아 접어둔다. 우리의 4가지 미래를 거짓과 위선, 흑색의 진창 속에서 뽑아야 한다는 것이 불행한 현실이다.
박진용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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