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찾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설희(가명·18·여)는 울먹이며 다급하게 엄마(46)를 찾았다. 크리스마스 오후에 취재 약속을 한 기자는 대구 달서구 성서 주공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의 엄마를 찾아 나서야 했다.
다행히 설희의 엄마는 멀리 있지 않았다. 동네 어귀에 멍하니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희의 눈빛엔 안도감과 절망감이 교차했다. 쏟구치는 눈물을 소맷자락으로 황급히 감춘 설희는 민망한 듯 "엄마가 가끔 정신을 놓아요."라며 엄마를 부축해 집으로 향했다. 설희의 뒷모습이 위태로워보였다. 하지만 설희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왜 자꾸 정신을 놓는지, 누구를 애타게 찾아다니는지 말이다.
설희는 내년 고3 수험생이 되는 소녀가장이다. 11년 전 아빠는 집을 떠났다. 설희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강아지 집을 만들어주던 모습뿐이다. 정신을 놓기 전 엄마는 아빠의 모든 사진을 불태워버렸다. 아빠가 그리워 이혼 서류도 작성하지 못한 여린 엄마였지만 자식들이 아빠의 추억에 갇힌 채 사는 것만은 막고 싶어했다. 설희의 여동생인 민희(12·가명)는 아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아빠에 대해 절대 묻지도 않는다. 자존심 강한 민희에게 아빠는 뛰어넘어야 할 산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였다. 민희는 이번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아빠에 대한 미움을 공부로 풀어내는 민희. 설희는 그런 동생이 한없이 애처롭다.
추위 속에서 떨었던 엄마는 따뜻한 물 한잔으로 몸을 녹인 후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기억이 안나. 남편도, 딸도, 다 보고 싶은데 왜 기억이 안나지." 설희는 조용히 엄마 손을 잡았다. 엄마의 멍한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설희는 엄마를 방으로 데리고 갔다. 잠시 뒤 각오를 한 듯 설희는 지난 과거를 하나씩 끄집어냈다. "2002년 2월 18일 밤, 엄청 추운 날이었어요. 민희가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는지 엄마에게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대요." 설희는 마른 침을 삼켰다. "엄만 전혀 몰랐대요. LP가스통이 옆에서 새고 있었던 것을 말이에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화마가 닥쳤다. 다행히 이모집에 있었던 설희는 참변을 피했다. 하지만 민희의 쌍둥이 동생 진희(가명)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고 민희는 얼굴과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민희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때마다 엄마는 진희를 찾아다녔다. 화마의 참변은 민희의 얼굴만 할퀸 게 아니라 엄마마저 그렇게 무너뜨렸다.
그 후 설희는 집안의 가장이 됐다. 엄마가 정신을 놓을 때마다, 민희의 얼굴 성형수술이 이어질 때마다 항상 가족을 감싸안아야 했다. 설희에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집안 살림과 빠듯한 생활비, 민희 병원비 걱정까지 모든 것이 설희의 몫으로 오롯이 남아 있었다. "알아요. 절대 무너지면 안된다는 것. 꿋꿋이 견뎌 이겨내야 하는 것.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이면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게 돼요. 크리스마스잖아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제겐 일어날 순 없을까요." 눈물 가득 맺힌 눈빛으로 되묻는 설희의 얼굴에선 절망과 원망, 위태로움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 쌍둥이 키우는 최미진씨에게 1천514만원 성금 답지
매일신문 '이웃사랑' 제작팀은 24일 사업 실패 후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그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 열 살 터울의 여동생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여대생 정희경(19·본지 12일자 10면 보도) 양에게 1천259만 3천700원의 성금을 전달했습니다. 성금을 건네받은 정 양은 "다행히 아버지 상태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 성금을 아버지 재활치료에 쓸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정 양은 "기사가 나간 뒤 많은 성금이 모여 휴학을 하지 않게 됐다."면서 "졸업한 뒤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낼 것"이라며 성금을 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해왔습니다.
한편 미숙아로 태어난 후 골반 뼈가 빠진 상태로 신경치료를 받고 있는 지수, 자라면서 다리가 굽어 교정치료를 받고 있는 지원이 쌍둥이(5·여)를 키우고 있는 최미진(35·여·본지 19일자 10면 보도) 씨에게 22개 단체, 93명의 독자분께서 1천514만 540원의 성금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생명보험㈜ 대구지역본부 200만 원 ▷제일안과병원 100만 원 ▷하이트맥주㈜ 대구지점 50만 원 ▷국제전기㈜ 30만 원 ▷선산컨트리클럽 30만 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 원 ▷경신교육재단 20만 원 ▷신행건설 20만 원 ▷한영한마음아동병원 20만 원 ▷금강엘이디제작 20만 원 ▷우리병원 20만 원 ▷한라효흥장학문화재단 10만 원 ▷세광한의원 10만 원 ▷대평리내과의원 10만 원 ▷김영준치과의원 5만 원 ▷경동치과 5만 원 ▷㈜동해 5만 원 ▷봉촌보건진료소 5만 원 ▷일신플라스틱 3만 원 ▷이연합치과 3만 원
▷서봉수·이신덕 정유주 각 50만 원 ▷김진숙 30만 원 ▷정춘자 성호상 각 15만 원 ▷배준호 12만 원 ▷손명자 윤혜숙 손병욱 김광선 최창규 김병우 김근용 엄하진 서은희 이환철 하영희 각 10만 원 ▷전홍영 이재현 김경희 심옥희 서준교 김형중 노광자 손병서 이송이 안영호 김상기 이소현 김민철 최순복 김경애 이진술 노재영 정순화 각 5만 원 ▷김정욱 박혜숙 추문성 김창수 각 4만 원 ▷이진홍 이영철 김영순 구본섭 정영희 김태욱 구회덕 오명철 류근철 최윤영 김상호 이해수 각 3만 원 ▷김영숙 김홍대 신광련 배연회 정혜란 김영훈 김기수 이용도 강원진 신중식 성영식 이준교 각 2만 원 ▷김경화 남복현 김명훈 유창식 홍의문 윤영열 박성철 최해송 홍양표 이소석 진수진 진희진 박태용 최태호 윤정혜 이은정 김수일 이경해 이상숙 각 1만 원 ▷조정미 5천 원
또 '도형'이라는 이름으로 한 분이 30만 원, '정과덕'이라는 이름으로 한 분이 11만 2천900원, '486', '아사나모'라는 이름으로 두 분이 각 10만 원, '정박', '신매영림', '단비영서', '다마소', '무기명'으로 다섯 분이 각 5만 원, '지원지수'라는 이름으로 한 분이 3만 원, '힘내세요'라는 이름으로 한 분이 2만 원을 보내주셨습니다. 한편 대구북중 2학년4반 학생 일동이 '100원의 기적'이라는 이름의 7만 6천67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저희 '이웃사랑'에 성금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저희 '이웃사랑'에 관심과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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