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 조선민족의 표상 봇나무

중국 길림성(吉林省) 창춘(長春)은 '봄이 길다'는 뜻으로 풀이하는데, 일본이 세운 만주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비운의 '푸이'(溥儀)가 살았던 만주국 황제의 궁전인 위황궁이 있으며, 서울 여의도의 10배가 넘는다는 정월담(靜月潭), 그리고 남호(南湖)를 비롯해 거대한 호수가 여럿 있는데 자연경관을 압도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중국의 동북 삼성(東北 三省) 가운데 하나인 길림성 성도(省都)로 인구는 약 213만 명 정도이다. 우리 조선족은 5만 명이 살아가고 있다. 창춘에는 중국의 조선민족을 대변하는 성급(省級) 대형 문예잡지인 '장백산'(長白山)과 길림신문사가 있는데 모두 조선어로 발간되고 있다.

이는 조선민족의 얼과 정신을 대변하며 하루 세 끼의 밥을 거를 수 없듯이 조선민족에게는 없어서는 아니 될 물과 공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민족은 저마다 뿌리가 있고 그 민족만이 갖는 고유한 전통과 문화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선민족 또한 거대한 중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스스로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향유하며 시대에 발맞추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해외동포의 입장에서도 민족과 국가의 개념은 오늘과 미래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언론인이기 이전에 시인으로 이미 오래전에 중국문단에 이름을 올린 바 있는데 '장백산' 문예잡지사 총편으로 또는 길림신문사 사장으로서 날마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한몸에 안고 길림성의 언론창달과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 조선족들은 시나 수필·소설·평론을 쓰는 문인들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조선어로 문학을 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우리 조선어로 글을 쓴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벅찰 따름이다. 가무를 즐기는 데 있어서도 중국문화를 수용하면서 고유한 조선민족 문화를 향유하는 데는 너와 나가 따로 없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 삼성에는 어디를 가나 봇나무(자작나무)가 눈에 띈다. 봇나무는 춥고 황량한 벌판일수록 더욱 꿋꿋하게 군집을 이루어 살아가는데, 그 모습이 옛 조선민족을 상징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우리 조상들이 씨뿌려 놓은 생명의 나무 같다는 말이다.

나무줄기가 유난히 하얀 것도 흰옷을 즐겨 입은 조상들의 숨결로 여길 만하다. 내가 쓴 '봇나무' 라는 시가 있어 한 번 소개해 본다. '바람의 채찍질에 등이 구불고/ 눈보라 물어뜯어 옷이 찢겼네/ 근육은 불거져서 돌뼈가 되고/ 살가죽 갈라 터져 창상이 되고/ 하늘은 너에게 공정치 못하건만/ 너는 하냥 쓰러질 줄 몰라라/ 돌바위에 뿌리박은 부락들이네/ 자랑차게 머리 쳐들 산민들이네/ 봇나무여, 봇나무/ 굴함 없고 불멸하는 족속들이여,'

어느 민족이나 그 민족의 특성이랄까 속성이라는 게 있다. 김치와 된장을 잊을 수도 없고 흰밥을 거를 수 없듯이 조선민족은 짜고 맵고 쓰고 쿰쿰하게 곰삭은 식성에 길들여져 있어서 어떤 고난이나 역경 속에서도 잘 헤쳐나가는 기질이 있다고 자부해 본다.

중국 동북 삼성 전역에 산재해 있는 봇나무를 유심히 살펴본다. 겨울이면 눈보라를 맞고 있는 그 봇나무가 안으로는 식지 않는 조선민족의 표상으로 다가온다. 봄이 오면 그 하얀 나무줄기에 연초록 잎새를 매다는데 바람이 불면 흥겹게 춤을 추듯 흔들리는 그 모양이, 수십 수백 수천 수만의 잎새가 일제히 몸을 흔드는 그 형상이 조선민족만이 가진 흥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남영전(시인·중국 길림성 문예잡지 '장백산' 총편·길림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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