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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옥입니다)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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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인가 착각할 만큼 밋밋하던 날씨가 아연 돌변했다. 강원도 대관령에는 올 겨울 가장 낮은 영하 20℃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몰아쳤고, 전국 곳곳마다 寒波(한파)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평창에는 올 겨울 첫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심각한 지구 온난화로 남극 빙산이 급속하게 녹아들고, 아프리카 최고봉 케냐 킬리만자로의 자랑이던 만년설도 급격히 줄어들어 이 추세라면 2020년께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봄꽃의 대명사인 개나리가 일 년에 몇 번을 피고 지는지 모른다. 지구 전체가 더워지고 있는 터라 오랜만의 冬將軍(동장군)이 반갑기까지 하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 돼버린 지 한참 오래됐다. 대구만 해도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어 거대한 스케이트장이 되곤 했던 수성못이 벌써 오래전부터 언다는 것 자체를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겨우내 골목길에서 희끗거리던 잔설, 그것들이 녹아 질퍽거리던 풍경, 눈 녹은 물이 밤새 얼어붙어 길가던 노인이며 아이들이 미끄덩 미끄러지던 모습들, 처마끝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고드름도 이젠 기억 속에서나 아련하다. 겨울날 아궁이 가득 지핀 청솔가지에서 피어올라 허공으로 흩어지던 푸른 연기처럼.

이름 짓기의 달인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1월을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또는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 같은 멋스러운 이름으로 불렀다. 우리네 1월도 그런 이름에 어울릴 만했다. 함박눈, 눈꽃, 수정 얼음이 남루한 세상을 온통 반짝거리게 만들었으니까.

눈고장이 아니라설까, 때때로 눈 내리는 풍경이 그리워진다. 호남 사람들은 눈이라면 지겹다며 손사래부터 치겠지만 겨울 내내 하늘도 땅도 맨송맨송할 뿐인 이곳에선 가끔 눈이 펄펄 내렸으면 싶다. '~천 리에 얼음 덮이고/ 만 리에 눈 날리네(千里氷封 萬里雪飄)~'라고 읊었던 모택동의 '沁園春·雪(심원춘·설)' 시구마따나 천지의 경계가 아득해질 만큼 백설이 난분분한 장관을 눈이 시리도록 보고 싶어질 때가 있는 것이다. 갈수록 산다는 게 만만찮아지는 이 시절, 더러 그런 광경을 볼 수 있다면 지치고 팍팍해진 가슴에 온기라도 좀 돌지 않으려나.

한파가 코를 찡하게 하는 이런 날이면 휘날리는 눈발이 삼라만상을 어루만지며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서정주 '내리는 눈밭에서' 중) 부드럽게 속삭이는 소리도 듣고 싶어진다.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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