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곶감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는 우리 옛 전래 설화가 있다. 우는 아이에게 "호랑이 왔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지만 "곶감 줄게"라고 말하면 울음을 그쳤다는 이야기다. 자연히 호랑이가 "내보다 더 무서운 놈이 곶감이구나"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감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라고 전해지지만 곶감이 널리 쓰인 것은 조선시대로 보인다. 18세기 실학자 정동유의 만필집 晝永編(주영편)에 곶감을 종묘제사 때 진설했다는 기록이 보이고, 궁중연회를 기록한 '진연의궤'나 순조 때 나온 '규합총서'에도 곶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원래 三白(삼백)의 고장 상주를 상징해온 세 가지 흰 것은 쌀과 누에고치, 목화였다. 그러다 1970년대부터 곶감이 목화를 대신하고 있다. 전국 곶감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상주는 전국 최대 곶감 산지다. 상주 감은 맛이 떫은 '둥시'다. 둥글게 생겼다고 해서 둥시인데 이를 곶감으로 만들면 하얀 분이 많이 난다고 해서 粉枾(분시)라고도 한다. 그래서 삼백에 들어간 것이다. 상주 둥시는 탄닌 함량이 많아 그냥 먹으면 맛이 떫지만 곶감으로 만들면 당도가 30% 이상 높아져 타 지방의 곶감에 비해 훨씬 달다고 한다.
60, 70년대만 해도 곶감을 열 개 또는 스무 개씩 짚으로 묶거나 꼬챙이나 실에 꿰 함지에 넣어 다락에 보관했다가 아이들 손에 하나씩 쥐여주면 그보다 신나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명절 선물 목록에 오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런데 도회지 사람들이 하얀 분 덮인 곶감을 외면하는 바람에 희멀건한 곶감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곶감을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소리다. 곶감이 삼백의 하나가 된 것도, 분시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분 때문이다. 말리는 과정에 자연스레 생기는 것인데 굳이 분을 털어내고 먹는 것은 무슨 취미인지.
설을 앞두고 곶감이 제철이다. 최근 상주'청도 등 경북 감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상주 둥시로 만든 곶감이 처음으로 미국'캐나다 수출길에 올랐고, 청도 반시로 만든 감말랭이와 반건시가 청와대에 납품된다는 소식이다. 귀하다고 소문나면 바깥으로 자꾸 내보내는 세상이다. 이러다 정작 본토박이들은 제 고장에서 나는 진배기 맛도 못 보고 값싼 중국산 곶감만 먹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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