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 치는 이른 아침 겨울 용문산 가 보았다. 천 년을 넘게 살아 거무칙칙한 은행나무
벗을 것, 다 벗어 던지고 바람 앞에 알몸
그렇지만 껍질 단단해 계곡에 박힌 돌멩이 같고, 그 속에 박힌 옹이 어머니 젖가슴 같으니,
때 되면 잎을 토해내 천 년을 더 살겠다
이쯤 되면 영원을 산다고 할 수밖에요. 천 년을 넘게 살고도 천 년을 더 살겠다는 믿음을 주는 나무가 어디 흔한가요? 그만한 세월의 절집이라도 한 채 거둬 온 나무만이 가질 수 있는 우주적 몸짓이려니 싶습니다. 오래된 은행나무가 스스로 젖멍울을 만들어 땅으로 뻗치던 모습을 본 기억이 나는데요. 그러니까 그게 대지에 젖을 물리는 일임을 이제 알겠습니다.
눈발 치는 이른 아침에 마주한 산과, 그 산이 품은 나무. 이 한 컷의 풍경이 시심을 자극했나 봅니다. '천 년을 넘게 살아 거무칙칙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주는 감흥이 행간을 늘였다 놓았다 하는군요. 추위에 직면할수록 외려 벗을 것 다 벗어 던지는 은행나무는 그냥 그대로 겨울 자연입니다.
'바람 앞에 알몸', 불쑥 던지는 직관의 한마디에 마음이 한 소끔 끓어오릅니다. 세속의 술내가 그윽한 향내로 바뀌는 순간이죠. 이미 승속의 경계 따위는 없습니다. 이런 데서 자연에 대한 절대 긍정의 숫눈길이 열릴 테지요.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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