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부처님 비서와 대통령 비서

석가모니의 비서로 발탁돼 25년간 시봉했던 阿難(아난)은 말 그대로 '완벽한 비서'의 본보기로 꼽힌다. 아난은 부처님 비서로 추천됐을 때 몇번을 사양하다 다음 세가지 조건을 내걸고서야 비서직을 맡았다.

첫째, 헌옷이든 새 옷이든 佛陀(불타)의 옷은 입지 않는다. 둘째, 불타가 신도의 초대를 받았을 때 동참해서 음식을 들지 않는다. 셋째, 때도 아닐 때 혼자 불타를 뵙거나 시중을 하지 않는다. 그 말을 전해들은 석가모니는 "과연 아난은 대단한 녀석이다. 첫째 조건은 다른 제자보다 자기만 특혜를 입는 것을 경계하고 삼가겠다는 것이고, 둘째 조건은 비서로서 분수를 가리고 교만해지지 않겠다는 것을 자숙한 것이며, 셋째 조건은 남의 험담을 告(고)하지 않고 敎團(교단)의 일에 쓸데없이 끼어들어 말하지 않도록 경계한다는 뜻이 아닌가"며 칭찬해 마지않았다.

석가모니의 인물 평가대로 아난은 이후 남을 얕보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 몸을 아끼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남의 험담을 하지 않고, 물질적으로 이득을 보지도 않는 등 스스로 내건 조건을 지키며 완벽한 비서 노릇을 수행했다.

엊그저께 첫 확대 비서관 회의를 가진 MB정부의 청와대 비서들은 과연 부처님이나 아난이 보시기에 몇점짜리 비서들이 될까. "비서는 입이 없다"며 입조심을 앞질러 경계한 대통령 실장의 훈시나 "비서실이 세던데 권한 휘두르는 일 없을 것"이라며 측근 비리를 경계하고 "하위 비서관도 直報(직보)를 하라"고 한 대통령의 당부를 보면 청와대 비서들 각오 역시 아난의 세 가지 조건에 비견해 볼 만하다.

다만 "비서는 최소한 3년간은 감기가 들어서는 안 된다"는 비서 수칙이 무색하게 벌써 대통령실장은 입술이 부르트고 "4시간 자고 일하기가 힘들다"는 푸념이 옥에 티랄까…. CEO 시절 새벽 출근으로 유명한 정주영 회장 밑에서 단련된 이명박 대통령의 페이스를 포시러운(?) 교수'전문직 출신 文官(문관)형 비서들이 따라 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서 입 부르트는 것보다 비서를 활용하는 주군의 마인드가 어떤가 하는 점이다.

비서의 덕목과 갈 길을 제시해 주고 경계의 깃발을 미리 들어보인 MB의 각오나 마인드는 언뜻 나무랄 데 없어 보인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작은 불안이 없지 않다. 수석비서관을 제치고 하위 비서관들의 세세한 직보를 받겠다는 거나 현장 보고를 듣겠다는 넘치는 의욕이 그것이다. 그것이 왜 불안 내지는 우려거리인가를 天子(천자)의 면류관에서 짚어보자.

중국의 천자가 쓰는 면류관은 앞뒤 쪽에 오색의 띠로 꿰매 있는 珠玉(주옥)장식인 旒(류)가 주렴처럼 늘어져 눈앞을 적당히 가려주고 있다. 또 관의 양옆에는 황색실로 만들어진 주광(귀덮개)이 달려 있어 귀를 막아준다.

이는 천자된 통치자는 작은 일까지 살피고 살펴서 너무 밝아도 좋지 않고 오히려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 '無形(무형)의 것'(큰 세상 흐름)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주광 역시 자질구레한 일을 너무 많이 듣지 않도록 하라는 것으로 아래나 주변의 세세한 보고보다 '無聲(무성)의 것'(소리 없는 민심)을 들어야 함을 상징한다.

청와대 비서들이 아무리 부처님의 아난을 본받으며 자기성찰을 한다 해도 주군 쪽이 큰 것만을 보려는 안목과 소리 없는 소리를 듣겠다는 주광의 의미를 깨닫지 않으면 시너지 효과는 없다. 미주알고주알 현장에서 챙기고 모든 비서들의 소리를 다 들으려 들면 면류관을 쓰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부처님은 아난을 추천한 高弟子(고제자)들에게 비서가 필요한 이유를 말하실 때 "교단일은 그대들이 맡으면 되지만 여러 가지 잡무가 있으니…"라고 했었다. 형태 없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소리만 듣는 여유를 갖기 위해 교단일은 고제자들에게, 잡무는 비서에게 믿고 맡긴 셈이다. 부처님 비서와 이 대통령 비서의 역할 분담의 차이가 바로 거기에 있다. 존경받는 이 대통령께서 이제는 세세히 챙기는 건설회사 CEO형 스타일에서 면류관을 쓴 천자 스타일로 변모했으면 하는 바람도 그 차이 때문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