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포츠 인사이드] 권위주의 벗는 프로 스포츠

이탈리아의 축구 명문 AC밀란이 지난해 2006-2007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자 거칠고 격정적인 미드필더 젠나로 가투소는 버릇없게도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흔들며 우승의 기쁨을 표현했다. TV 화면으로 당시 그 장면을 지켜 본 국내 팬들이라면 '우째 저런 일이~' 하고 혀를 끌끌 찼을 일이었다. 감독과 선수 사이가 수직적 위계 질서 하에 엄격하게 정립된 한국적 기준으로는 가투소의 행동이 상식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감독과 선수 사이가 비교적 대등하게 정립된 서구 사회라 하더라도 가투소의 행동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점이 없지 않았다.

최근에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풀햄의 설기현이 한 달 이상 장기 결장하면서 그 원인이 로이 호지슨 감독과 출전을 둘러싸고 말 다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설기현이 유럽식 질서에 적응, 행동하다 어려움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가투소의 '감독 머리 흔들기'는 한국 사회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행위이다. 그만큼 감독의 권위가 절대적인 한국이지만 최근에는 선수들과 대화하고 배려하는 감독의 리더십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이다. 올 시즌 프로축구에서 사령탑으로 데뷔하는 황선홍 부산 아이파크 감독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황 감독은 선수들을 권위적으로 대하기 보다는 자상하게 이끌면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 바 있는데 부산 선수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인자한 감독'으로 통하고 있다.

변병주 대구FC 감독도 '큰 형님' 같은 스타일로 편안함을 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다른 프로축구팀 감독들도 엄격하거나 자상함을 떠나서 선수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리더십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로야구도 마찬가지이다. 선동열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은 '엄격한 아버지'라기 보다는 '편안한 큰 형님'같은 분위기로 선수들을 대하면서도 자기 만의 지도 원칙으로 팀을 잘 이끌어가는 감독으로 통한다. 또 과거 엄격함과 대비되는 '미국식 자율 야구'로 바람을 일으켰던 이광환 감독이 신생 구단 '우리 히어로즈'의 지휘봉을 잡으며 일선에 복귀했고 결정적으로 롯데 자이언츠가 첫 외국인 감독인 제이 로이스터 감독을 영입하면서 야구판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프로농구에선 서울 삼성의 안준호 감독이 경기 도중 경험이 풍부한 고참 선수들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작전 지시를 변경하는 파격적인 스타일로 화제를 낳기도 하는 등 각 감독들이 개성에 따라 선수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국 프로 스포츠에서 감독과 선수 간의 관계가 좀 더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데 비해 아마추어 스포츠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는 아직 그렇지 못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불거져 나온 여자 선수들에 대한 '성폭행 파문'도 그러한 풍토에서 빚어진 것이어서 우리 스포츠의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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