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유가 급등세가 지속됨에 따라 지역 산업계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지역 산업계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유가 급등으로 각종 원·부자재 가격이 도미노처럼 오르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정부는 유가 급등 부담을 덜기 위해 여러가지 에너지 절감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고 있다.
◆지역 산업계 초비상
한달 평균 벙커C유를 40만ℓ 정도 사용하는 성서공단내 한 염색업체. 지난 1일 벙커C유 ℓ당 가격이 650원에서 706원으로 인상되면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달 평균 2천여만이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최근 증가하는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공장을 가동시켜야 하지만 그만큼 기름이 더 들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열심히 공장을 가동해도 마진은 갈수록 줄어들기만 한다. 이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벙커C유가 400원대에 불과했다"면서 "벙커C유 대신 도시가스로 설비교체를 하고 싶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이마저도 어렵다"고 말했다.
직물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 유가가 상승하면서 원사값이 덩달아 오르고 있다. 지역 섬유업계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원사값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15% 올랐다. 하지만 대다수 업체들은 인상 전 가격으로 외국 바이어들에게 납품할 수밖에 없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대구지역 직물업체 한 관계자는 "상반기 수출물량이 마무리돼야 외국 바이어와 납품가격에 대한 재협상을 할 수 있다"면서 "유가가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전했다.
◆주유소·운송업계도 최악
주유소업계도 고유가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제 유가 급등으로 대구지역 휘발유와 경유값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주유소협회 대구시지회에 따르면 지난 2일 현재 대구시내 휘발유와 경유가는 ℓ당 각각 1천732원, 경유 1천648원으로 지난주에 비해 각각 19원, 30원이 올랐다.
대구지역 440개 주유소는 고유가로 기름 소비량이 주는 데다 판매경쟁으로 마진이 줄어들어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수성구 노변동 한 주유소는 판매량이 올초보다 10~15% 정도 감소했다. 이 주유소 대표는 "정유사의 공급가격은 치솟는데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데다 카드수수료를 제외하면 마진이 2~2.5%에 불과하다"면서 "앞으로 폐업하는 주유소가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운송업계도 기름값이 오르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경유값은 올초보다 270원 정도 올라 유가보조금(ℓ당 270원)이 고스란히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 개별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 관계자는 "물량이 없는 데다 기름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면서 "정부에서 유가보조금을 더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구책 마련 부심
절삭공구를 생산하는 성서공단내 한국OSG에서 기름은 '귀하신 몸'이다. 이곳에서 기름은 적정한 온도와 습도로 유지된다.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한 방울의 기름이라도 아껴야 하기 때문. 이 업체는 쇠를 깎는데 사용하는 연삭유를 최근 지난해보다 20% 오른 2억5천만원을 들여 구입했다. 이 업체 이한우 상무는 "기름값이 오르더라도 당장 제품가격에 반영하지 못한다"면서 "고육책으로 첨단설비를 도입해서 낭비되는 기름을 막고 제품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연삭유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완성차업계에 부품을 납품하는 지역 자동차부품업체들은 운송비 상승으로 비상이 걸렸다. 기름값이 인상되면서 부품 운송비가 갈수록 치솟기 때문이다. 지역 차부품업체인 에스엘의 경우 최근 공장 불량율을 줄이고 재고를 줄이는 생산성향상운동 등 원가절감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희진 상무는 "운송비가 갈수록 부담이 되고 있다"면서 "매년 하는 생산성향상운동이지만 올해 들어서는 좀더 강도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묘안이 없다
일부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 시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유가 충격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이렇다할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 정부의 고민이다. 어차피 전체 원유의 절반 가량을 쓰는 산업분야에서는 특별한 대책을 내놓기가 어렵다. 결국 가정·상업용 등 여타 분야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캠페인 이상의 성격을 갖기 힘든 데다 과도한 에너지 사용억제가 가뜩이나 하향곡선을 그리는 국내경제를 주름지게 하거나 다른 정책 목적과 충돌해서는 안된다는 전제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유가충격을 줄이기 위해 지난 3월 휘발유와 경유 유류세의 10% 인하가 단행됐지만 국제 석유제품가격이 폭등하면서 유류가격은 이미 지난달 세금 인하효과를 모두 잠식한 뒤 사상 최고치 행진을 벌이고 있다.
유가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신재생 에너지나 원자력 발전의 비중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그 성과를 보려면 장기간이 소요되고 원유 자주개발률을 높이는 것도 안정적 수급에는 도움이 되지만 값싼 석유를 확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 관계자는 "에너지 대책은 어느 나라에서나 단기간내 해결될 만한 성격의 정책이 아니다"면서 "어렵고 시간이 걸리지만 에너지 절감에 대한 국민의식을 높여야 하며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것들을 차근차근 밀고 나가면서 경제와 사회의 체질개선을 해나가는 것이 해법"이라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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