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골이 깊으면 물이 맑다. 지리산과 덕유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함양은 이런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풍광이 다채롭다. 여기에'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릴 만큼 일찍이 선비문화가 발달, 유서 깊은 서원·향교·정자 등이 주변풍광과 잘 어우러져 있다.
벌써부터 한낮 햇볕이 따갑다. 봄과 여름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면서 청량한 숲과 시원한 계곡물을 찾아 자연과 함께하는 여유를 즐기기 위해 함양의 상림(上林)과 농월정(弄月亭)계곡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자 천년의 숲'상림'
상림은 함양읍 서쪽을 흐르는 위천수 냇가에 자리한 방수림. 1천100여년 전인 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이 태수로 부임하면서 홍수의 피해를 막고자 둑을 쌓고 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의 숲을 이룬 시초다. 이후 숲 중간이 파괴, 현재는 상림과 하림으로 갈라져 있으며 하림은 마을이 형성돼 몇 그루의 나무만이 그 흔적을 말해주고 있지만 상림은 옛 모습 그대로 잘 간직돼 있다.
수정 같은 계류가 흐르는 숲 입구는 초록의 향연이 한창이다. 물가에 핀 연분홍 철쭉이 바람에 살랑이자 고운 새색시의 자태를 닮았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초록의 터널을 이루는 숲은 싱그러운 향기가 코를 찌른다. 5월의 햇살에 제 속살을 내비치기가 무안했던지 숲은 연초록의 잎사귀들로 앞가림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어른거리는 햇살을 뚫고 숲 안에 들면 함양 읍성의 남문이었던 함화루(咸化樓)가 눈에 띤다. 홑처마에 팔작지붕, 이층 둘레는 닭 벼슬 난간으로 된 소박한 누각이다.
본격적인 상림 산책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숲 속 나무들은 자란 형태도 제각각이다. 아예 땅에 드러누웠거나 반쯤 엎드린 게 있는가 하면 밑 둥지가 썩어 커다란 구멍이 생겼음에도 가지는 연녹색의 잎을 활짝 피워내고 있다.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인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가 몸통을 합해 하나로 자라는 나무도 있다. 연리목(連理木)이다. 부부금슬과 남녀간 깊은 애정을 비유한 연리목은 예로부터 상서로운 나무로 여겨왔다. 상림에는 연리목이 두 그루나 자라고 있다.
상림의 길은 약 3km로 꽤 긴 거리다. 그러나 숲이 선사하는 녹음의 활력소 때문인지 그리 피곤함을 느낄 수는 없다. 나무그늘 아래엔 가을이면 그 함초롬한 꽃을 피울 수선화와 꽃무릇도 열심히 땅의 양분을 빨아들이고 있다.
산책길 중간에서 만난 작은 정자 사운정(思雲亭) 옆엔 최치원 선생의 공적비가 있다. 도중에 만난 주민에 따르면 상림엔 숲 조성 당시 최치원이 나무에 걸어놓았다는 금호미가 있는데 마음씨 착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전설이 있다. 아직까지 금호미를 봤다는 사람은 없다.
상림은 비단 숲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함양을 빛낸 11인의 역사적 인물을 기린 역사인물공원과 너럭바위, 그리고 인근 사적지에서 발굴한 고려시대 석불, 물레방아 등이 재현돼 있다. 숲 사이로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소리,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의 이파리들, 하얀 물살을 일으키며 흐르는 맑은 계류, 나무와 나무사이를 뛰어다니는 다람쥐들….
상림에 머물다 보면 바깥 세상과는 또 다른 공감각적인 세상을 만나게 된다. 넓이 21ha(6만여평)에 120여종 2만여그루의 나무가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녹록치 않은 시간의 타임캡슐을 말이다.
#한잔 술로 달을 희롱하던 농월정 계곡
상림에서 나와 26번 국도를 따라 가면 등장하는 농월정 계곡. 더없이 넓은 너럭바위 위로 흐르는 맑은 물이 자연의 운치와 더불어 가슴 속까지 적셔 준다.
'달 밝은 고요한 밤 암반 위로 흐르는 계곡물에 비친 달빛을 한 잔 술로 희롱한다'는 의미의 농월정은 조선 중기 학자 지족당 박명부가 낙향 후 세운 정자. 그 오른쪽 너럭바위엔 지족당장구치소(지팡이를 짚고 노닐던 곳)라는 글이 깊게 새겨져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농월정은 2003년에 완전히 불타 지금은 흔적조차 모호하다. 이 때문에 계곡의 풍치는 약 90%가 제 멋을 내지 못하는 것 같다.
정자 앞 하얀 너럭바위에 앉았다. 물줄기가 바위를 타고 넘어와 정자 있던 자리 앞에서 조용히 소를 이룬다. 소의 물이 맑고 깊어 보는 이로 하여금 혼란스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계곡 옆으론 신록의 산세와 여름을 향해 치닫는 하늘이 녹청과 대비, 한 폭의 선경을 연출하고 있다. 주변 황석산 솔숲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산들바람에는 솔향이 그윽하다.
한참을 그렇게 너럭바위에 앉아 물소리, 바람향기, 그림 같은 풍광에 빠져 있자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를 잊어버린다. 그저 막히면 돌아들고 높으면 가차 없이 떨어져 흐르는 물의 생리가 거친 세상사를 아등바등 살아야하는 일상의 욕심을 잠재울 뿐이다. 예부터 사람들이 계곡을 찾아 은거하던 까닭은 이 때문일까!
◇함양 상림 가는 길=88고속도로 함양IC에서 내려 300m가량 직진 후 우회전, 계속 가면 함양읍이 보인다. 함양 읍내 첫 네거리와 두 번째 네거리를 통과한 후 나오는 다리 앞에서 우회전, 10여분 가면 된다.
◇농월정계곡 가는 길=상림 주차장에서 나와 좌회전, 첫 네거리에서 다시 한번 좌회전해 24번국도를 탄다. 계속 가다가 안의면을 통과 후 첫 신호등에서 좌회전하면 거창·김천 방향 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가다 관북삼거리에서 좌회전, 26번국도를 따라가면 농월정국민관광지가 보인다.
◇일두 정여창 고택
상림에서 농월정 계곡 가는 길 중간 함양 지곡면 개평리 마을에는 조선시대 5현 중 한사람인 일주 정여창(1450~1504) 선생의 고택이 있다.
경남의 대표적인 양반집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이 곳은 솟을대문을 비롯해 행랑채·사랑채·안채·광채·사당 등이 정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당시 세간도 비교적 제자리에 배치, 양반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솟을대문 위에는 5개의 충신과 효자를 기린 정패(旌佩)가 걸려 있으며, 단청이 곱게 칠해진 사당이 안채 쪽으로 지어져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정갈한 안채로 들면 부엌 뒤편으로 장독대가 있고 독립적인 광채가 있어 대가집 살림살이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랑채 마당엔 오래된 노송이 누각을 향해 절을 하듯 가지를 뻗어 있고 신을 벗고 사랑채에 들어 내부구조를 살피게끔 개방돼 있다. 개평리엔 이 밖에도 오담 고택, 하동 정씨 고가, 풍헌 노씨 대종가, 노참판댁 고가도 함께 구경할 수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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