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우기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비가 온 뒤에 빗물이 땅속으로 얼마나 스며들어 갔는지, 흙의 젖은 깊이를 조사했다. 그러나 비가 오기 전 토지의 상태에 따라 정도가 달랐기 때문에 강우량을 정확히 측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1441년 戶曹(호조)가 측우기 설치를 건의해 측우 관련 제도를 새로 제정, 이듬해인 1442년 5월 19일 장영실 등이 측우기를 발명했다.
측우기는 깊이가 약 31cm, 지름이 약 14cm의 원통모양으로 철로 만들어 서울과 각 도의 군현에 설치되었다. 측우기는 돌로 만든 측우대 위에 올려놓고 비 온 뒤에 그 속에 고인 빗물에 나무로 만든 주척을 꽂아 빗물의 깊이를 측정했다. 우량에 관한 시간, 비의 종류, 빗물의 깊이를 자·치·푼까지 정확히 기록했다. 측정된 강우량은 곧 집계되어 중앙에 정기적으로 보고가 되어 전국에 걸친 강우량이 정확히 기록될 수 있었다.
1442년 세종때 만든 측우기가 과학사상 뜻깊은 것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는 것. 서양에서는 우리보다 200년이나 늦은 1600년대 중반에 측우기가 발명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로 당시에 만든 측우기는 모두 유실되었다.
▶1957년 제1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개최 ▶1961년 민족일보 폐간
정보관리부 성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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