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삼계탕도 노무현씨와 함께"

호랑이인 줄 알고 있다가 어느 날 눈 비비고 보니 고양이였을 때 그 고양이는 본디부터 고양이였던 고양이보다도 더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다.

허수아비도 처음 세울 때는 새들이 감히 얼씬도 안 하지만 허수아비의 무서운 눈과 시커먼 눈썹이 가짜라는 걸 알고 나면 제멋대로 벼 이삭 위에 날아든다.

그 어떤 힘센 권력도 상대로부터의 敬畏(경외)와 權威(권위)를 잃어버리면 고양이나 허수아비 대접밖에 못 받는다.

아무리 발톱을 세우고 눈을 부릅떠도 허사다. 피식피식 웃을 뿐이다.

지금 출범 백일을 맞는 MB 정부 꼴이 꼭 그 모양이다.

도무지 令(영)이 서질 않는다. 틀림없이 호랑이일 거라고 믿었는데 고양이 소리를 내고, 뭔가 다르게 해내리라고 믿었는데 이거 아니구나 싶으니까 여기저기서 幻想(환상)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장관 말씀보다 앞뒤도 안 맞는 괴담을 더 믿고 따르고 아무리 불순 배후 조직을 캐내고 선동자를 잡아내 엄단하겠다고 큰소리쳐도 촛불 숫자는 날이 갈수록 더 늘어난다.

경찰 코앞에서의 도로 점거쯤은 예사다. 이 사람 저 사람 검증 없이 잡아넣었다가는 금세 또 풀어 주는 원칙 없는 변덕 속에 국무총리의 '엄정조치' 엄포가 먹혀들 리가 없다. 경찰 닭장차 문틈 새로 공권력이 헛바람 소리를 내며 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500만 표짜리' 권위를 백일도 안 돼 80% 이상 다 까먹어 버리고 유모차까지 나선 촛불 앞에서 허우적대고 있을까 원인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은 민심과 여론 점검을 지시하면서 "'특히 교수 출신'들에게 유념해 달라고 하라"고 당부했다.

이상하게도 역대 정권보다 유난히 교수들을 측근으로 많이 끌어들인 MB가 지금 와서 왜 교수 측근들에게 아쉬움을 나타냈을까. 학교를 떠나 정치판에 끼어든 세칭 '정치 교수'들은 한마디로 배수의 진을 치지 않았다.

대학 복직이라는 退路(퇴로)가 뚫려 있으니 민심에 받히거나 다른 조직과 껄끄러워져 자존심 상한다 싶으면 언제든지 되돌아가는 피난처(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수 출신들에게…"라고 한 것도 대통령의 눈에는 전쟁터 뒤에 강물 대신 옛 직장이 기다리는 답답할 것 없고 자존심만 강한 교수 출신 참모 장수들에게서 사생결단의 머슴정신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훌륭한 교수 참모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민심과 동떨어진 현실성 없는 책상머리 정책을 내봤다 집어넣었다 하는 강의 노트 속의 '나 홀로 정책' 생산자들이 있다면 과감히 솎아 내는 게 맞다.

MB 또한 외곽을 넓히고 敵陣(적진)에서도 지혜를 끌어내라. 왜 그렇게 배포가 없는가. 조류인플루엔자(AI) 홍보를 위한 닭고기 시식도 만만한 측근끼리만 모여 먹지 말고 봉하마을에 찾아가 '노형, 삼계탕 한 그릇 얻어 먹읍시다'며 한 식탁에서 사진 찍혀 보라는 거다. TV가 그냥 있겠나, 신문이 놀고 있겠나. 그게 입만 앞세운 대국민 담화보다 민심에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삼계탕 한 그릇도 큰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석이조의 정치적 이벤트를 만들어 가며 먹는 그런 정치력을 수련하라.

지금 MB의 통치자로서의 권위는 청계천 개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책상머리 정책 입안 文臣(문신)들은 갈아치우고 최대한 빨리 통치자 修業(수업)을 끝내야 다시 개천 위로 올라올 수 있다.

대통령 초보운전 연수기간이 너무 길면 경제도, 민심도, 권력도 다 놓친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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