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도시 철학' 不在 빚는 대구 횡단보도 갈등

경남 창원에서 지지난달 착공된 30만 평 크기의 한 신도시에서는 모든 도로가 보행자 중심으로 설계됐다. 너비가 6∼8m밖에 안 되는 좁은 도로에도 반드시 2m짜리 인도를 만든다. 횡단보도는 그 높이를 인도만큼 높인다. 자동차는 덜컹거리며 그 턱을 넘어 다녀야겠지만, 걷는 사람은 인도와 편안히 이어 다닐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서울시청은 어제 '공공공간 디자인 10원칙'을 발표했다. 인도 너비가 1.5m 이하일 경우 휴지통 설치는 물론 가로수 심기조차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지하도나 육교 설치를 금지하고 대신 횡단보도를 만들도록 했다. 이 결정의 기본정신 또한 도시의 중심은 걷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도 못하던 일들이다. 지금까지 도시에서 우선시돼 온 것은 자동차 통행이다. 육교를 만들고 지하도를 판 목적도 그것이었다. 인도 역시 걷는 사람의 불편은 아랑곳 않고 마구 점령해도 괜찮은 공간으로 치부됐다. 지방정부부터가 온갖 잡동사니 시설들을 들여앉히니, 한걸음 더 나아간 운전자들은 그걸 그만 만만한 주차장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자동차와 사람의 우선 순위가 뒤집히기 시작한 것이다.

지하도가 있는 구간에서의 노상 횡단보도 설치를 두고 대구에서 승강이가 잇따른다. 동아쇼핑 앞에서 먼저 그러더니 이번엔 한일극장 지점이 문제다. 보행자가 중심 돼야 한다는 사람들과 그렇잖은 사람들의 생각이 어긋나는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정작 큰 문제는 대구시청에 있다. 이쪽 편을 들었다가 저쪽 편을 들었다가 오락가락하느라 갈등을 더 키우는 도로행정 탓이다. 도시 운용 철학 부재가 부른 난맥상이다. 대구시는 바로 그 점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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