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이후 계속된 유가폭등에 견디다 못한 화물 노동자들이 파업을 예고하자 화주와 운송사들은 "30%란 인상 요구폭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정부에 대해 "기름에 붙는 세금을 줄여 기사 부담을 낮추고 기업에도 감세정책을 펴 이를 운송료에 보탤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정부는 정부대로 "운송료 조정은 시장원리에 맡길 일이지 정부가 나설 사안이 아니다"며 발을 빼려 했다.
화물연대 파업에 책임있는 이들 3자는 각각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귀 기울여 보면 각자의 목소리에 근본적인 해법이 들어 있을 법도 하다.
◆화물연대 "화주들이 이익폭을 줄여라"(도덕성 발휘하라)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업체들은 철광석과 유연탄·고철 등 원자재 값이 올라 경영여건이 좋지 않다며 올 들어 매달 한차례꼴로 제품가격을 인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경영성적이 자신들의 주장대로 나빠졌나요? 더 좋아지지 않습니까? 이건 객관적 사실입니다. 정유사들이 국제시장에서 원유가가 올랐다며 잇단 가격인상을 통해 원유가격이 낮을 때보다 더 고수익을 올리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13일 포항공단 동방삼거리 파업집회 현장에서 만난 화물연대 조합원 A씨의 말이다. A씨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화주들이 국제시장의 각종 원자재 가격폭등으로 경기가 어려워졌다면 일시적으로 자기들 이익을 줄이더라도 경제적 약자인 운송업자 등 영세 하청업자들의 기본적인 수익을 보장해 주는 게 도리인데, 원자재 가격이 1% 오르면 이를 핑계로 제품가는 그 이상 올리고, 하청업자에게는 원가부담 상승을 이유로 비용을 동결하거나 더 깎으려 하는 상거래의 부도덕이 불합리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화물연대 주장의 결론은 "대기업 중심의 화주들이 경제적 도덕성을 발휘해 불경기에는 자신들의 마진율을 줄이고 협력·하청업체부터 살려놓고 봐야 한다는 생각만 가졌다면, 화물연대 등에 운송료를 올려줄 수 있었을 것이고 이렇게 하면 파업사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기업이 이윤폭을 일시적으로 줄여 화물차주들을 밀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화주 "정부가 문제, 여론 듣고 세금 줄여라"(정치력 발휘하라)
대기업 중심의 화주들은 현 사태를 두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정부가 문제"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경유를 비롯한 유류가의 60% 이상은 세금인데, 지금같은 비상상황에도 받을 세금은 꼬박꼬박 다 거두려 하니 반발을 사는 것"이라며 "유가에 포함된 세금을 일시적으로 대폭 내려 차주들의 숨통을 틔워 주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 대기업 임원도 "기업에만 대고 '운송료 올려줘라'고 윽박지르지 말고 정부가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을 일정 부분 덜어준 다음 절감한 세액을 운송료 인상에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등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원칙만 따지고 있으니 해법이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력을 발휘해 일시적 감세정책을 펴고, 깎아준 세금이 화물차주들에게 가도록 하라는 말이다.
◆정부 "차량 대수 줄여 수급안정 확보하자"(시장원리에 맡기자)
2003년 첫번째 화물연대 파업사태가 터졌을 당시 "물동량에 비해 화물차가 많다"는 지적이 많았다. 물동량은 일정한데 화물차가 너무 많아 운송료가 제자리걸음하거나 오히려 깎이는 현상이 빚어졌다며 정부는 당시 화물연대에 수익성 없는 차의 폐차 방안을 제시했었다.
이후 당시 해양수산부가 실시했던 어선감척사업처럼 "감차(減車)사업을 펴야 한다"는 말이 정부 일각에서 나왔으나 파업이 풀리면서 이런 주장도 흐지부지됐다.
5년이 지난 지금 사정은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화물차가 많아 시장원리에 따라 운송료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현실인식 논리다. 차가 너무 많다는 사실은 화물 노동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본격적인 감차사업을 정부 방침으로 정하고 지입차주 등 운송업자들도 자구방안의 하나로 노후차량 자진폐차 등 화물차 대수 줄이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본격 제기되고 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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