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목숨을 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과연 나에겐 목숨을 걸 만한 그 무언가가 있었던가.
살면서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작은 욕심에 마음을 끓이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의 화두를 짊어지고 명상에 잠겨보는 것도 좋다.
부처님의 산이라 불릴만큼 절이 많은 팔공산에, 천주교 성지인 한티성지이 있다. 경북 칠곡 동명면에 위치한 한티성지는 해발 600m가 넘는 깊은 산골로,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온 신자들이 몸을 숨기고 신앙을 지키며 살았던 곳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역사는 앞서 나간 사람들의 핏빛 발자국 위에 만들어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의 자유도 마찬가지. 지금 밤하늘을 수놓은 수 많은 십자가의 그늘엔 누군가의 피와 목숨이 서려있다. 믿음과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명상에 잠겨 보는 것은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의미있는 시간이 될 터이다.
한티성지을 방문하기 전에 그 곳에 대해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좋다. 유교 전통이 강하던 영남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신유박해(1801) 이후로, 을해박해(1815), 정해박해(1827) 등을 통해 많은 신자들이 대구감영에 이송, 수감됐다. 이 때 경상감영에 갇힌 신자들의 가족과 형제들이 옥바라지를 위해 감옥과 비교적 가깝고 안전한 한티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838년 김현상 가정을 비롯해 신자들이 모이기 시작, 1850년대 말에는 큰 신자촌이 됐다. 하지만 68년, 한티에도 피바람이 불어닥쳤다. 포졸들이 들어와 재판과정도 없이 배교하지 않는 조가롤로를 비롯한 30여명의 신자들을 현장에서 처형하고, 달아나는 신자들은 뒤따라가서 학살했다고 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돌아와보니, 온 산 곳곳에 시신이 썩어가고 있었고 너무 많이 썩어 옮길 수 없어 그 자리에 매장했다. 이 때문에 한티성지엔 순교자의 묘가 광범위하게 흩어져있다.
한티성지는 여기에서 발걸음을 시작하면 된다. 순교자 묘역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는 데는 30여분이 걸린다. '이 곳은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곳입니다.' 바윗돌에 새겨진 문구는 방문자를 숙연하게 만든다. 십자가의 길 제1처에서 화살표를 따라 가면 14처까지 연이어 나온다. 이곳에는 당시 순교자가 묻혀 있는데 조아기, 최발바라, 조가롤로 외에 이름없이 묻힌 순교자가 많다. 삶과 죽음이 하나인 이 곳에서, 조용히 묵상하며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는 것은 그 자체로 경건한 마음 수양이 된다.
문의 054)975-5151.www.hanti.or.kr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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