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민들이 뜻모아 '참전 유공자 기념비' 세웠다

▲ 대구 동구 북촌지역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의 손으로 만든 기념비 제막식이 21일 팔공산 아래 백안삼거리에서 열린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대구 동구 북촌지역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의 손으로 만든 기념비 제막식이 21일 팔공산 아래 백안삼거리에서 열린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6·25 전우와 월남참전 용사들의 이름 석자 돌에 새겨 이 땅에 세우나니, 역전의 용사로 민주의 꽃이 되소서, 겨레의 빛이 되소서···.'

19일 오전 8시 30분 대구시 동구 백안동 백안삼거리. 참전용사 487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진 5m 높이 대형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 기념비는 공공기관에서 세금을 들여 세운 공덕비나 위령비가 아니라 순수하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으로 만들어졌다.

김태락(72·동구 용수동)씨는 "동구 북촌 출신의 전사자나 생존자가 수백명에 달했고 이들의 후손들이 아직도 이곳에서 살고 있는데 우리 국토를 지켰고 국위를 선양했던 선조의 넋을 기릴 그 무엇도 없었다"며 "생존자나 후손들을 수소문했고 십시일반 거둔 성금으로 기념비를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동구 북촌은 자인·능성·도학·백안·미곡·용수·심무·미대·내동 등 9개동 지역을 뜻한다. 지난해 초 기념비를 세우자는 의견이 나왔고 '6·25 및 월남참전 유공자 기념비 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31명의 후손들으로부터 100만원씩, 200만원씩 모두 4천여만원을 모았다. 그 와중에 추진위원회 회원들은 각 동네에서 참전 용사를 파악했다. 틀린 것, 빠진 것을 파악하는 데 1년 6개월이 걸렸다. 참전용사는 487명이었다. 기념비를 세운 후 2명의 전사자가 추가로 파악돼 기념비에 이름을 더 새길 계획이다.

이 기념비는 특이하다. 사람 몸통만한 군화조각상 위에 '전우여 잘자라'는 군가가, 철모조각상 위에는 추진위원회 명단과 시(詩) 한 수가 조각돼 있다. '6·25때 아홉살이던 나는 유난히도 철이 없었나 보다… 미숫가루가 먹고 싶어 어서 피난가자고 졸라댔다' '우리 다시 만나 회한의 화랑담배 연기 길게 내뿜으며 마주보고 반길 날 멀지 않으리' 등 회원들이 참전 당시를 회상한 창작시 10수도 새겨져 있다.

기념비 건립 추진위원장 김윤규(76·동구 진인동)씨는 "회원 중 1명(권오식·83)이 기념비를 세우는 날 유명을 달리해 더욱 숙연해진다"며 "용사들의 영혼이 고향 땅에 돌아와 우리와 대화하고, 주민들은 시를 읊어 그들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추진위원회는 앞으로 백안삼거리 일대에 시비를 더 세워 '시동산'을 꾸미기로 했다. 팔공산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과거를 잊지않고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릴 수 있도록 조경사업에 힘쓸 계획이다. 21일 오전 11시 이재만 동구청장을 비롯한 동구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이 열린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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