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타들 입 조종하는 '그들'…구성작가들의 세계

쇼·오락·코미디·버라이어티 등 예능 프로그램은 드라마와 함께 시청률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때로는 '저질 시비'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잘 만든 예능 프로그램은 보는 이들에게 스트레스 해소와 활력을 준다. '무한도전' '1박2일' '무릎팍도사' '라디오스타' '상상플러스' '스펀지' 등 예능 프로그램이 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화제를 뿌리는 이유다. 예능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구성 작가들이다. 대중스타나 PD의 그늘에 가려 있지만 작가들은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진행하며 출연자들의 입을 조종한다. 예능 프로그램 작가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무슨 일을 하나

예능프로그램에서 작가는 프로그램의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출연자들의 코멘트를 대본화한다. PD가 촬영과 편집을 맡는다면 작가는 대본, 출연자 섭외, 소품 등을 담당하는 식이다. 메인 작가가 프로그램의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면 PD와 다른 작가들과 함께 아이템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방향을 정한다. 이후 자료 수집과 인터뷰, 취재, 섭외, 대본 작성 등도 작가의 몫이다. 대개 1주일이면 이 같은 과정이 마무리되지만 새로운 코너나 프로그램의 경우 자료 수집과 취재 등으로 3, 4주 정도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실제 '스펀지'에서 새로 시작하는 '직업의 비밀' 코너의 경우 첫 방송의 주제인 '승무원의 비밀'을 만들기 위해 승무원 인터뷰와 자료 수집, 대본 작성 등에 한달이 걸렸다. KBS '스펀지'를 맡고 있는 김아정(31·여) 작가는 "주변의 경험이나 통계, 뉴스, 해외 방송 등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는다"며 "이런 식으로 낸 아이디어가 아이템 회의를 통해 구체화되고 최종적으로 전파를 타게 된다"고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 작가는 드라마 작가와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드라마가 작가 1인의 역량에 크게 좌우된다면 예능 프로그램은 팀 작업인 경우가 많고 소품, 섭외, 대본 담당으로 조직화돼 있다. 예를 들어 작가가 9명인 '스펀지'의 경우 메인 작가 2명, 대본 작가 4명, 각종 자료 수집과 섭외·대본 작업 보조 역을 담당하는 작가 3명 이런 식이다. 작가 수는 프로그램마다 다른데 MBC '무한도전'은 8명이고 MBC '쇼! 음악중심'은 3명, KBS '해피선데이'의 '1박2일'은 3명이다.

쇼·오락과 리얼 버라이어티, 코미디 등 예능 프로그램의 각 장르에 따라 작가들의 역할도 조금씩 달라진다. '스펀지' '비타민' '주주클럽' 등 속칭 '쇼양(쇼+교양)'으로 불리는 정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대본 작업이 중시되지만 '무한도전' '우리 결혼했어요' '1박2일' 등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세밀한 대본보다는 기획이나 구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두서 없이 보이는 '리얼 버라이어티'에도 물론 대본이 있지만 연기자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고 애드리브가 많기 때문이다. 쇼 버라이어티에서 작가들은 프로그램의 큰 틀과 방향을 정하고 현장 상황에 따라 더 재미있는 구성을 제시한다. 가령 '1박2일' 복불복 게임에서 벌칙음식을 까나리액젓으로 할지, 식초나 레몬으로 할지를 결정하는 식이다. KBS '주주클럽'의 오흥석(42) 작가는 "드라마는 작가가 대본의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을 지는 1인 시스템이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여러 작가가 함께 만들어낸 틀에 맞춰 연기자들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며 "결국 경험보다는 상상력이 더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했다.

◆현장 진행도 작가들의 몫

오락프로그램에서 MC의 오프닝이나 진행 코멘트는 작가들이 써 준 대본에 따라 진행된다. 게스트들이 들고 있는 큐시트에는 출연자에 따라 해야될 말이 세밀하게 적혀 있다. 그러나 '막말'이나 '독설'까지 대본 작업을 하지는 않고 게스트의 역량에 따라 튀어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들은 출연자와 사전 인터뷰를 하거나 기사화된 자료들에 근거해 대본을 쓴다. 특히 연예인들의 이혼 등 민감한 문제는 사전에 질문을 알려주고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 출연자가 꺼리면 사전 조율을 하고, '무릎팍도사'처럼 독한 질문이나 출연자가 난처할 수 있는 질문은 '연예계 뒷담화'보다는 언론매체에서 기사화된 사실을 위주로 질문한다.

촬영현장에서 현장 진행도 작가들의 역할이다. 예능프로그램의 경우 변수가 많고 출연자의 발언에 따라 상황이 급변하기 때문에 작가들의 순발력이 중요하다. 특히 음악프로그램 등 생방송은 방송 시간이 초를 다투는 탓에 즉석에서 대본을 고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비밀은 작가들이 들고 있는 스케치북이나 화이트보드. 프로그램 진행 도중 게스트가 끼어들어서 진행자가 해야 할 이야기를 못하게 되거나 당초 기획했던 방향과 달라질 경우 작가들은 즉석에서 대본을 써서 프로그램을 조율한다. 김아정 작가는 "스펀지의 경우 게스트들이 답을 너무 못 맞히면 힌트를 주기도 하고 분위기가 늘어지면 바로 VCR로 넘기기도 한다"며 "출연자가 많은 프로그램의 경우 방송에서 소외되는 게스트도 있기 때문에 MC에게 '○○○씨에게 질문해주세요'라는 내용을 써 보여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글 같은 세계

예능프로그램 작가의 세계는 살벌한 정글이다. 프리랜서인 탓에 시청률에 따라 파리 목숨 처지를 면치 못한다. 근무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고,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해진 휴일도 없다. 작가 세계의 불문율 하나. 몇개의 프로그램을 하든간에 방송 관계자들로부터 연락이 오면 요즘 '2개' 맡고 있다고 얘기한다는 것. 오 작가는 "3, 4개씩 한다고 말하면 '우리 프로그램에는 신경을 못 쓰겠구나' 생각하고, 일이 없다고 하면 '아, 요즘 감이 떨어져서 일이 없구나'라고 방송 관계자들이 느끼기 때문에 그냥 2개라고 말한다"고 귀띔했다.

예능 프로그램 작가가 되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주로 공중파 방송사들이 운영하는 방송 아카데미를 통해 입문하는 경우가 많지만 작가협회에서 운영하는 작가교육원을 거치거나 '알음알음'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극본 공모에 당선되거나 방송국에 낸 프로그램 기획서가 채택돼 들어오기도 한다.

예능 작가들의 수입은 천차만별이다. 경력이 6개월~1년 정도인 막내 작가의 경우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 60만~80만원에 그친다. 2, 3년 정도 경력이 쌓이면 월 150만원, 3~5년 차 정도가 되면 월 20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린다. 5년차 이상 돼야 메인 작가로 채용되는데 회당 70만~100만원 정도를 받는다. 케이블 방송은 더 적어서 공중파의 60~70% 수준에 불과하다. 10년 차 이상인 베테랑 작가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들은 회당 150만원 이상으로 수입이 월 600만~800만원이지만, 동시에 2, 3개 프로그램을 맡는 일부 스타 작가들의 경우 월 1천500만원 이상 벌기도 한다. 그러나 10년 이상 경력을 자랑하는 작가는 통틀어 100여명 남짓에 불과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전체 예능 프로그램의 수를 감안하면 결코 많지 않은 셈. 작가의 수명도 그리 긴 편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 작가의 90% 이상이 여성이기 때문에 대부분 4, 5년차가 되면 출산이나 결혼 등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한 작가는 "수입이 들쑥날쑥한데다 툭하면 밤을 새울 정도로 고되기 때문에 요즘은 4년제 대학을 나온 작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털어놨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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