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일이 무엇이죠?"
사장이 묻는다. 재취업을 위한 면접이다. 오랜만에 입은 정장이 몸을 조여와 그런지 바짝 긴장을 했다. 이마는 기름과 땀으로 번들번들했다. 적당히 대답하자고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도무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머릿속은 막을 새도 없이 그때의 기뻤던 순간들로 가득 찼다.
친구가 죽었을 때··· .('살인방관자의 심리' 중에서)
'종신검시관' '루팡의 소식'의 요코하마 히데오는 '휴머니즘 미스터리소설'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증오와 시기심, 살인의 영역인 미스터리에 '휴머니즘'을 덧댄 것이다. 살인을 저지르거나, 이를 방관하는 이들은 모두 사악한 연쇄살인마도 아니고, 요즘 흔히 얘기하는 사이코패스(살인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도 아니다. 애면글면 살아가는 우리 주변인이다.
친구가 죽었을 때 가장 기뻤다고? 가라테반의 학생들이 지옥훈련을 갔다. 체력은 한계까지 바닥나고, 악마 같은 선배들의 가혹한 린치는 계속된다. 어떡하면 이 지옥훈련을 끝낼 수 있을까. 누구라도 죽었으면…. 그때 친구의 시체가 떠오른다.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보다, 모두는 이제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과 주체 못할 기쁨이 밀려온다. 그러나 이 순간, 모두는 살인의 방관자가 되고 씻을 수 없는 상처는 평생을 따라다닌다.
이 책은 '진상' '마음의 지옥' '살생부' '살인방관자의 심리' '그 집의 미스터리' 등 5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평범한 생활인들이다. 아버지의 회사를 이어받은 성실한 가장에 미래가 보장된 공무원, 한때 잘나갔던 자동차 딜러, 멀쩡한 직장에 사표를 내고 고향에 돌아와 과수원 농사를 돕는 남자, 주위의 시선에 안절부절못하는 전과자 부부 등이다.
약간 지나친 욕심, 또는 소심함 때문에 범죄에 휘말리고, 후회하며 좌절하는 상처받은 이들이다.
그래서 소설은 내러티브(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고통과 상처에 포커스를 맞춘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등장인물이 곧 범행이 밝혀질 것 같아 전전긍긍하지만, 결국 '진짜 사건'은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다는 식의 구조를 갖는다.
'그 집의 미스터리'는 과거의 행적이 드러나 이사를 갈 수밖에 없는 전과자 부부가 주인공이다. 그때 동네 한 노인의 선행이 베풀어지고, 그의 양자가 되어 재산과 집을 물려받는다. 그러나 '선행'은 순수한 것이 아니었다. 그 집은 평생을 밝힐 수 없는 노인의 '과거'가 묻혀 있다.
정교한 반전이나, 밀실 살인은 없지만 인간 심층에 잠복한 어둠의 무게와 이에 허덕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생생하다.
1957년 도쿄에서 태어난 지은이는 프리랜서 기자 출신으로 1991년 '루팡의 소식'으로 제9회 산토리 미스터리상 가작, 1998년 '어둠의 계절'로 제5회 마쓰모토 세이초상, 2000년 '동기'로 제53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부문상을 수상했다. 340쪽, 9천800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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