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이야기] 외교특사 판다의 실직

1972년 미국의 닉슨대통령 부부가 중국을 방문했다. 대나무장막의 빗장을 풀던 역사적 만남, 주은래 중국 총리의 유머가 돋보인다. "좋아하십니까?" 불쑥 한마디 건네며 닉슨 부인에게 담배를 권한다. 당황한 닉슨부인,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싱긋이 웃는 주은래 총리, 담뱃갑 위에 그려진 판다를 가리키며 "이놈을 좋아하십니까?" 회담이 끝나고 귀국한 닉슨 부인은 진짜 판다가 미국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오! 주여, 들었습니까, 주총리가 판다를 보냈습니다!'

판다가 중국의 외교특사로 처음 임용된 것은 서기 685년이었다. 당시 여황제 측천무후는 일본과의 우의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일본 천무천황에게 두 마리의 판다와 70장의 모피를 예물로 보냈다. 최근 기밀 해제된 중국외교부문서에 따르면 판다외교가 정식으로 시작된 것은 중화민국시기였다. 1941년 송씨 자매가 중국난민구제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미국정부에게 판다 한 쌍을 보냈다. 1946년에는 영국정부에도 판다 한 마리를 보냈다. 불완전한 통계이지만 1936년에서 1946년 사이 중국에서 송출된 판다는 모두 16마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외에 적어도 70여 마리의 판다박제가 서방국가의 박물관에 보내졌다. 신중국 성립 이후에도 판다외교는 계속되었다. 1957년에는 쓰촨에서 잡은 세 마리의 판다 가운데 한 마리를 모스크바로 보내 중소간 돈독한 우의를 과시하기도 했다.

70년대에 들어 판다외교는 절정에 이르렀다. 마오쩌둥은 판다특사로 전 세계에 매력적인 외교를 구사했다. 데탕트라는 세계사적 전환점에서, 식욕 왕성한 판다가 중국과 세계를 가로막고 있던 난공불략 죽의 장막을 먹어치웠다. 1972년 일본에 건너간 판다 란란과 캉캉은 일본국내에 판다열풍을 일으켰고, 덕분인지 1979년 일본정부는 중국정부에게 정부개발원조(ODA)를 개시했다. 종횡무진 판다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1973년에는 프랑스, 1974년에는 영국, 연방독일, 멕시코, 스페인까지 출동해서 수교를 이루었다. 1957년에서 1982년 사이 중국은 9개 국가에 23마리의 판다사절을 보냈고 국빈대접을 받았다.

판다가 중국을 상징하는 외교사절로 선택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보기에 귀엽고, 사람들과 친화력이 강하다. 대나무만 먹는 초식동물이고, 게으름 때문에 성행위조차 귀찮아한다. 그래서 현존하는 1천600마리의 판다수가 점점 감소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중국당국은 판다의 멸종을 막으려고 야한 동영상을 보여주거나 비아그라를 투입하여 성욕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이러한 판다의 특징은 중국이 세계에 알리고 싶은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초식동물이기 때문에 공격력이 없어 남을 침범하지 않을 것이며, 친화력이 강해 다투지 않을 것이며, 번식력이 약해 인구의 위협도 걱정할 것이 없다는 내용, 즉 중국위협론에 대한 변명이 담겨있다. 그리고 동시에 왕성한 식욕을 가진 놈이기 때문에 스스로 먹이를 찾도록 하지 않고 방해하면 결국 방해하는 자가 그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이런 판다 외교대사가 실직할 처지에 놓였다. 1982년 이후 중국정부는 무상으로 행하는 판다외교를 중지한다고 밝히고, 임대사업으로 전환해서 수익을 올렸다. 그러다 최근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의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번식과 생물학 연구에 필요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판다의 송출을 금지시켰다. 혹자는 이에 대해 판다 대여무역을 더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것은 더 이상 판다외교를 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한 중국정부의 의지이다. 돌이켜, 중국이 상대적으로 약자였을 경우에 판다사절이 파견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외교대사 판다는 일종의 인질이었던 것이다. 이제 중국 스스로 강해졌다고 느끼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보기보다 성질이 급하고 화도 잘 내며, 덩치에 맞지 않게 나무도 잘 타고, 특수한 경우 육식도 하는 야생판다로 돌아가고 싶은 게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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