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화의 시는 성애와 욕망의 가락이며 흐느적거리는 수양버들의 풍류다. 시집 '그리운 연어'는 달빛 아래 벗어 던진 속곳과 하얀 속살의 춤사위다. 그녀의 시적 재료인 '에로티시즘'은 남녀가 이성을 그리워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성적욕망을 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이화의 시는 음탕하지 않다. 관능적이며 세찬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생동감 넘친다.
'고백컨대/내 한 번의 절정을 위해/밤새도록/지느러미 휘도록 헤엄쳐 오던/그리하여/온밤의 어둠이/강물처럼 출렁이며 비릿해질 때까지/마침내 내 몸이/ 수초처럼 흐느적거릴 때까지// 기꺼이// 射精을 미루며,/ 아끼며,/ 참아 주던// 그 아름답고도 슬픈 어족/그가 바로 지난날 내 생에/그토록 찬란한 슬픔을 산란하고 떠나간/내 마지막 추억의 은빛연어입니다' -그리운 연어-
이 시뿐만 아니다. 그녀의 시에서는 유두, 음부, 정사, 체위, 젖무덤, 지분대기, 무릎과 무릎 사이, 오르가즘과 같은 말들이 예사롭게 등장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시는 '외설의 혐의'에서 자유롭다.
문학 평론가 이형권은 "박이화의 시가 음란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외설적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성적 이미지들이 감각적, 말초적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인생이라는 원관념의 보조관념으로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박이화의 시가 흔히 여류시인들이 즐겨 추구하는 '성의 정치학'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남녀불평등, 여성성, 여성 권익을 말하지 않는다. 그녀의 시에 나타나는 '성적언어'는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언어일 뿐이다.
'나의 홍살문 나무 중엔 품계 높은 자작나무도 있고 법도 높은 동백나무도 있지 반면 어디서나 사향 냄새 풍기는 화류의 나무도 있지 그 나무, 맨날 음풍농월하는 됴화나무라고 말 못하지 봄바람에 유독 춘색 밝히는 복숭아나무라고 더더욱 말 못하지 더욱이 서풍이 건 남풍이 건 바람이란 바람은 죄 그의 정부라고 내 차마 내 입으로 말 못하지 (하략)' -나의 홍살문- 중에서
시인 박이화는 칼과 춤,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했다. 셋 모두 한없이 '무겁고 단순하며 심드렁한 무엇'이라고 했다. 칼과 춤, 고양이는 오직 제 리듬을 따라 움직이며, 그 움직임은 진중하되 빠르고, 일단 움직임을 완료한 후에는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칼과 춤, 고양이는 리듬을 타야 하며 리듬을 잃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 했다.
'칼은 함부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흥 없는 몸놀림은 춤이 아니다. 고양이는 아양떨거나 고개 숙이지 않는다.'
그녀는 시 역시 그렇다고 했다. 무사가 칼을 휘둘러 적을 베듯, 문득 떠오른 시상을 단 한번에 낚아챌 뿐이라고 했다. 상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조금씩 조금씩 접근하지 않으며, 단칼에 베고 나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이화는 대중가요 가사를 써서 수상한 적이 있고, 수필로 등단한 적도 있다. 그러나 시는 공부로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시를 쓸 작정입니까? 어떤 시인으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해 나갈 것입니까?'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적병처럼 시심이 다가오면 칼을 들어 낚아챌 것이고, 여명과 함께 어둠이 물러가듯 시심이 사라지면 또 그뿐이라고 했다. 시인으로서 자신은 '언제 파산할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밤의 어둠을 밧줄로 묶을 수 없듯, 고민하고 쥐어 짜낸다고 시가 되어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박이화는 자신의 시에 규칙이나 바탕정서, 질서가 따로 없다고 했다. 흔히 '에로틱'하다는 말을 듣지만 의도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쓰고 싶은 대로 썼고, 마음이 통하는 독자가 공감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녀는 "시는 한 줄만 써도 부족하지 않고, 열 줄을 써도 넘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칙이 없다. 오직 내가 쏟아내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 독자 역시 자신과 맞으면 공감하며 읽으면 된다"고 했다.
시인은 자신의 시가 에로틱함으로 상징되는 것은 육체적 교감에 관한 내용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자평했다.
"남녀의 육체적 교감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내 시에는 상대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대 없음은 '근원적 부재' '소통부재'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어떤 시인이 절경은 시가 안 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사랑, 종결됐다고 믿는 사랑은 시가 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랑했으나 이룰 수 없었던 사랑, 미완의 사랑, 그래서 남은 무엇, 부재하는 무엇이 곧 인생의 꽃이며 내 시다. 어쨌든 사랑은 내 시의 영원한 18번이자 불멸의 레퍼토리이다."
시인은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남해와 부산에서도 생활했다고 했다. 산과 들을 보며 살던 아이가 부산바다를 보았을 때, 환하게 불 밝히고 있던 배가 멀어져갈 때, 그리고 결국은 불빛마저 사라지고 검은 바다만 남았음을 확인해야 했을 때의 고독과 쓸쓸함이 '최초의 장면'처럼 내면에 남아 있다고 했다. 그 검은 부산의 바다 역시 그녀에게는 부재하는 무엇으로 각인됐다.
박이화는 두 아이의 엄마며 아내인 생활인이다. 그녀는 일상인의 역할에 대해 '충실하지 못한 편'이라고 했다. 그녀는 "나무 마루를 닦고 또 닦는다(일상을 윤기나게 열심히 행함)고 금마루가 되겠나? 눈에 보이는 먼지 쓸고 그저 잠자리를 펼 수 있는 정도면 되지 않나?"라고 했다. 그녀는 스스로 마루에 내려앉는 먼지를 유심히 살피는 사람이 아니며, 유심히 살필 만큼 밝은 눈(관심 있는 눈)을 가진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박이화는 시와 일상 외에도 관심분야가 다양했다. 잘 치지는 못하지만 화투를 즐기는 편이라고 했다. 화투가 좋은 것은 오직 그 붉은 색깔과 그림 때문이라고 했다. (인터뷰하면서 '나는 화투치는 걸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설령 화투를 즐기는 사람이라도 그런 말을 일부러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박이화는 댄스스포츠 트레이너 겸 심판으로 일할 만큼 라틴 댄스에도 일가견이 있다. 노인복지대학에서 댄스를 가르친 적도 있다. 오래 전 검도를 배웠고, 칼과 무사의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했다. 평범한 여성의 관심사라고 하기에는 다소 낯선 검도와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 박이화=본명 기향(己香). 1960년 경북의성 출생. 대구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경운대학교 경호학과 대학원 졸업. 1998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그리운 연어'. 대표작으로 '나의 포르노그라피' '이화에 월백하고' '나의 홍살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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