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9禁' 만화 낯뜨겁나요?…'메가쇼킹' 만화가 고필헌

사람들 치부 살짝 노출했을 뿐

그의 만화를 보면 '옴팡지게' 즐겁다. 더럽고 퇴폐적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낄낄거리게 되는 만화. '메가쇼킹' 만화가 고필헌(35)에 네티즌이 열광하는 이유다. 그의 만화가 가진 최고의 미덕은 '언어유희'다. 패러디와 반전이 뒤범벅된 그의 만화는 촌스럽기 '서울역에 그지없지만', '염통이 쫄깃해질 정도'로 날카롭고 즐겁다. 2003년 연재한 그의 만화 '애욕전선 이상 없다'에 나온 이 명대사들은 '명대사 70선'으로 묶여 여전히 인터넷을 떠돈다.

요즘 그의 만화는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집중한다. 자신과 가족의 삶이 늘 소재가 된다. 일상적이면서도 감춘 속옷이 드러나듯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 "그런 게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치부를 드러내는 듯한 창피한 느낌 있잖아요." 지난 4일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에서 그를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비주얼'이 범상치 않았다. 박박 밀어버린 머리에 염소수염. 하지만 차를 잘못 타 약속시간에 1시간이나 늦은 기자의 결례를 웃어넘기는 대범함을 보여주었다. 사람은 역시 겉으로 볼 게 아니다.

◆요리사와 만화가

학창시절 그가 가졌던 꿈들은 기상천외했다. "꿈이 네 가지였어요. 만화가, 영화감독, 환경미화원, 에로배우. 어렸을 때부터 거리가 더러운 게 너무 싫었어요. 어른들이 거리에 침 뱉는 것도 너무 싫었고. 에로배우는 주인공 말고 잠깐 나왔다가 복상사(腹上死)하고 사라지는 역 있잖아요."

고씨의 만화 입문은 꽤 늦은 편이다. 부모 성화에 못 이겨 대학에 진학했지만 '여학생이 많고 수학을 하지 않는 과'를 찾아 식품영양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공부가 저랑 맞지 않았어요. 대신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음악 듣고 영화도 찍었죠. 그때 들었던 3천, 4천장 음반이 지금의 감수성을 갖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결국 그는 군에 입대하면서 대학을 중퇴했고 한식 조리사 자격증으로 놀이공원에서 요리사로 일을 했다. 하지만 '무미건조'한 요리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28세에 만화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만화로 사람을 웃길 수 있어서"가 이유였고, 독자의 즉답이 오는 인터넷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그가 네티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02년 DC인사이드에 '감격 브라다쓰'를 연재하면서부터. 이후 성에 대한 낯 뜨거운 묘사로 유명한 '애욕전선 이상 없다' '카툰불패' '탐구생활' 등 반전과 패러디가 뒤범벅된 자신만의 세계를 선보이며 강풀, 양영순 등과 함께 '웹툰 1세대'로 자리를 굳혔다. "만화가가 안 됐다면 지금도 요리사로 일하고 있겠죠. '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라고 투덜거리면서요."

◆자전거 신혼 여행과 결혼 생활

그는 지난해 아내 윤혜영(32)씨와 58일간에 걸쳐 전국을 일주하는 자전거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결혼 전에 홍은택씨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을 봤는데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자전거 신혼여행을 제안했는데 '저러다 말겠지'하는 눈빛이더라고요. 정말 갈 줄은 몰랐던 거죠." '배려심이라곤 없는 소심한 남편과 습관성 울컥증에 식탐 강한 아내가 자전거 타고 떠나는 좌충우돌 신혼여행'이라는 부제답게 부부의 성격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저는 마음속에 꾹 눌러 담고 있다가 화를 내는 편이고. 아내는 그때그때 화를 내는 대신 뒤끝이 없는 스타일이고. 싸우기도 엄청나게 싸웠어요."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달린 전국일주. 그는 여러 명소 중에서도 변산반도와 섬진강변, 통영, 강원도 7번 국도를 최고로 꼽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언덕을 올랐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를 보며 내리막을 질주하는 기분" 때문이다. 가장 괴로웠던 장소는 의외로 아름다운 섬 제주도.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주인아저씨가 '오하마나호'라고 제주도에서 인천으로 바로 가는 배편이 있다는 얘기를 한 거예요. 그 말을 듣더니 아내가 눈이 뒤집히더라고요. 계속 '오하마나호' 타자고 노래를 하는데 겨우겨우 달래서 부산으로 갔다가 또 대판 싸웠죠. 편할수록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니까요." 부부의 신혼 여행기는 '탐구생활2'라는 제목의 만화로 연재됐다. "그렇게 투덜대던 아내가 1년 정도 지나니까 재밌었다며 또 가자고 해요. 그래서 조만간에 일본 종단을 떠나볼까 합니다."

지난 5월부터 포털사이트에 연재 중인 탐구생활 시즌3 '소인배 라이프'는 아내와 겪는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을 소재로 풀어간다. 이 만화에서 그는 정리정돈과 절약이 몸에 밴 소심한 남편으로 묘사된다. 반면 아내 윤씨는 뱀이 허물을 벗듯 여기저기 양말을 벗어놓고, 하염없이 물건을 늘어놓는 스타일이다.

◆촌철살인 언어개그

-매주 연재하는 만화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세요?

"될 때까지 무조건 책상에 앉아서 파는 식이죠. 아이디어가 잘 안 떠오를 때는 인터넷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합니다. 통장 잔고가 줄어들고 공과금이나 국민연금 이런 게 숭숭 빠져나가는 걸 보면 의지가 막 생기더라고요."

-촌철살인 같은 대사와 표현은 어떻게 만들어냅니까?

"거의 애드리브예요. 잔머리를 많이 쓰고. 콘티 작업할 때는 일반적인 대사를 넣어서 콘티를 짜고, 마감 시간 1시간쯤 전에 막 쫓기면서 새로 써넣죠. 여유 있게 시간을 갖고 작업을 하면 재미난 표현이 안 나오더라고요."

-본인이 꼽는 가장 주옥 같은 대사는?

"솔직히 저는 제 만화에 나오는 대사를 거의 몰라요. 아무 생각 없이 애드리브로 하다 보니 기억에 남는 대사가 거의 없어요. 독자들은 '꽃피는 봄이 오니 메가톤급 외로움이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 온다'는 대사를 가장 좋아해줬죠."

-연재만화를 그릴 때 보통 얼마나 시간이 걸립니까?

"'탐구생활'은 이틀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일단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 중에서 지식거리가 될 만한 소재를 찾고 신빙성 있는 자료를 수집하죠. 다음에 콘티작업을 하고. 스포츠신문에 연재하는 '식스센스'는 금방 그려요. 아이디어만 생각해서 바로 표현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고료는 식스센스가 더 많아요."

-탐구생활을 자세히 보면 집에 TV가 없고, 항상 책을 손에 잡고 있던데요?

"제가 결혼할 때 목표로 세운 게 'TV 안 보기'와 '자동차 사지 않기'였어요. TV는 사지 않았는데 자동차는 파주로 이사 오면서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큰맘 먹고 경차를 구입했어요. 저는 운전면허가 없고 아내가 땄죠. 자동차 뒤에서 연기 나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순수문학은 전혀 안 읽고 자기 계발서를 좋아해요. 스스로에 교훈을 주는 면보다는 자기 계발서로 사람을 꾄다는 자체가 재미있어서 이것저것 많이 사보는 편이에요. 그 중에서도 '아침형 인간'과 캐런 킹스턴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잔머리

-잔머리로 덕을 본 경험이 있나요?

"군대에서 취사병이어서 새벽 4시에 일어났는데요. 오전에 연병장에서 대대장 훈시를 듣는데 너무 졸린 거예요. 참다 참다 저도 모르게 졸면서 세 걸음 앞으로 나가 버렸어요. '나는 죽었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잔머리를 굴려서 기절한 척해 버렸어요. 대대가 난리가 났고, 저는 하루 종일 요리도 안 하고 내무반에서 빈둥거렸어요."

-탐구생활 시리즈를 보면 늘 마지막에는 독자와 대화를 시도하던데, 독자의 반응을 보기 위한 겁니까?

"사실 다른 얍삽한 뜻이 있어요. 처음에 연재를 시작했는데 초딩 악플러가 들끓었거든요. 어떻게 하면 저 무자비한 악플을 근절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면 될 것 같아서 시도해봤죠. 진짜 악플이 확 줄더라고요."

-최근에는 적나라한 외설적인 묘사나 노골적인 대사의 수위가 낮아진 것 같습니다.

"노골적인 만화는 아무래도 독자층에 한계가 있더라고요. '애욕전선 이상 없다'가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도 '19금'인 탓에 서점에서 아예 진열이 안 되는 거예요. 책으로는 전혀 돈을 벌 수 없게 된 거죠. 어떤 독자들은 서점에서 차마 제목을 말하기 민망해서 '애정전선 이상 없다' 있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주변의 일상적인 소재나 애드리브로 구성되는 대사로는 한계를 느끼지 않습니까?

"저는 '탐구생활'을 일상적인 이야기보다는 지식 거리를 주려고 노력을 해요. '교양개그' 만화라고 할까? 앞으로는 환경전문가들과 연계해서 환경만화도 그려보고 싶어요. 또 '감격 브라다쓰'처럼 캐릭터들이 노골적으로 웃기는 개그만화도 다뤄보고 싶고요."

-만화는 언제까지 그릴 생각이세요?

"만화는 죽을 때까지 그리겠지만 직업으로는 어느 정도까지 이루면 그만두려고요. 그 이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떠돌아다닌다거나…. 이런 얘기를 하면 아내가 그러죠. 미쳤냐고."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고필헌은 누구?

인터넷 만화가. 1974년생. '당신은 정말 메가쇼킹한 만화가'라는 팬의 말에 메가쇼킹(Mega Shocking)을 필명으로 정했다. '언어개그'의 대가로 '감격 브라다쓰' '애욕전선 이상 없다' '카툰불패' '탐구생활' 등을 연재했다. 2006년에는 '애욕전선 이상 없다'가 성인 만화로는 처음으로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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