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다섯 번째 계절이 있다면

며칠 전 대구에 온 어느 영화배우가 "대구 날씨 정말 덥다"고 했다. "서울도 덥지 않으냐?"고 물으니 "비교가 안 되죠. 대구는 숨이 막혀요"라고 했다. "숨을 데 없이 한 방에 보내는 것이 화끈한 대구사람들 하고 비슷하다"는,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모를 말을 던졌다.

아스팔트까지 녹이는 대구의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여름하면 '보디히트'(1981년)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당시 파격적인 섹스신으로 얼굴을 붉혔던 영화다. 뜨거운 몸만큼 뜨거운 욕망이 마주치는 단내 나는 영화였다.

플로리다의 작은 해변 마을. 3류 변호사 러신(윌리엄 허트)에게 관능적인 여인 매티(캐서린 터너)가 접근한다. 그녀는 돈 많은 남편을 두었지만, 삶이 답답하다. 그녀의 농간에 러신은 그녀의 남편을 죽이지만, 결국 철창행을 면치 못한다. 뜨거운 여인에 포획된 어리석은 수컷의 말로였다.

매티는 '팜므 파탈'(사악한 여인)의 전형이다. 갖가지 함정과 장치를 파 놓고 여기에 빠져든 먹이를 매몰차게 처치하는 거미 여인이다.

그 함정이 바로 성이었다. 매티를 차지하기 위해 의자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 벌이는 정사는 여름 날씨처럼 감당하지 못할 뜨거운 욕망의 시작이었다.

이 영화는 한낮의 뜨거움만큼 진눅진눅하다. 영화 속에서도 윌리엄 허트는 계속 땀을 흘리고, 얼음 속에 재워놓은 맥주로 얼굴을 식힌다. 그 바람에 관객은 포획된 음모만큼 피할 수 없는 더위에 시달리게 된다. 여름의 정점에서 보면 더할 나위 없다.

기자는 대구의 날씨를 정말 좋아한다. 계절 중에서도 여름을 최고로 친다. 어릴 적 여름만 되면 동네사람들이 모두 그늘 살평상에 앉아 부채질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수박을 깨 얼음에 사카린 넣어 함께 퍼먹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요즘은 에어컨 때문에 전부 문을 꼭꼭 닫고 있지만, 그래도 여름이 좋다.

캐나다 출신의 밴드 아르모니움의 앨범 중에 '만일 제5의 계절이 있다면'(Si on avait besoin d'une cinqueme saison)이 있다. 이 앨범에는 4계절과 다섯 번째 계절을 뜻하는 노래 한 곡 등 5곡이 수록돼 있다.

봄과 여름은 밝은 톤이고, 가을과 겨울은 쓸쓸하면서 슬픈 감정이 밀려온다. 특히 여름을 뜻하는 곡 'Dixie'는 경쾌한 리듬감으로 상큼한 청량음료가 생각나게 한다. 제5의 계절을 뜻하는 5번째 트랙은 무려 17분 20초에 이르는 대작으로 사계절을 아우른다.

나에게 만일 다섯 번째의 계절이 있다면? 여전히 뜨거운 햇살과 강렬한 하늘빛, 출렁이는 나뭇잎이 풍성한 여름이 될 것 같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김중기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