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한나라당의 원내대표가 '국회 차원의 남북정치회담'을 북한에 제의했다. 이 갑작스러운 제의는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역시 갑작스러운 대화 제의와 연결되었다.
이 대통령의 대북한 정책은 파산한 '햇볕 정책'의 대안으로 나왔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햇볕 정책'은 본질적으로 유화 정책이어서, 북한 주민들에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북한 정권의 입지를 강화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지원을 북한의 행태와, 특히 핵무기의 폐기와 연결시킨 정책을 제시했다. 그것은 합리적이었고 대통령 선거에서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그 정책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북한의 행태가 바뀐 것도 아니다. 따라서 지금 이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을 바꿀 까닭은 없다.
합리적 정책을 그렇게 갑작스럽게 바꾸도록 만든 것은 국내 정치 상황이다. 북한에 대한 제의는 현 정권이 시위를 통해 세력을 과시한 좌파에게 보인 유화적 몸짓이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전향적인 대북 제의를 한다"고 예고하면서 정치적 국면의 전환을 기대했다.
이 대통령의 제의는 현 정권의 대북한 정책을 파산으로 이끈다. 북한의 '길들이기'에 쉽게 굴복한 현 정권은 두 좌파 정권들이 간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제의와 연결되었으니, 국회 차원의 회담을 제의한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그런 근본적 문제를 떠나, 국회 차원의 회담은 심각한 문제들을 지녔다. 전체주의 국가에선 어떤 조직이든 정권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전체주의 국가의 국회는 자유로운 국가의 국회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유로운 나라와 국회 차원에서 협상하면 얻을 것들이 많지만, 북한과의 협상에선 그런 성과가 나올 수 없다.
국회 차원의 회담은 실은 무척 위험하다. 북한의 국회는 대남 정책을 관장하는 조직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지만, 우리 국회는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이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지녔다. 자연히, 행정부와 다른 의제와 전략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은 우리 행정부가 대북한 정책을 수립하고 협상하는 데 어쩔 수 없이 방해가 된다.
게다가 우리 국회는 이념적으로 다양한 정당들로 이루어졌다. 일마다 드러내놓고 북한을 두둔하는 정당까지 있다. 그런 다양성은 우리 사회의 강점이지만, 북한과의 협상에선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회 차원의 회담은 북한이 우리 국회와 사회를 분열시키는 수단이 될 것이다.
바로 그런 현상이 해방 바로 뒤 좌우파 사이의 대립과 협상 과정에서 나왔다. 좌익 정당들은 '민주주의민족전선'이란 단체를 통해 정책과 행동을 통일하고서 여러 정당들로 나뉜 우익의 분열을 깊게 하고 우리 사회의 혼란을 키웠다.
전체주의 국가와의 협상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6·25 전쟁의 휴전 회담에서 처음 북한과 중국의 대표들과 협상을 해본 미군 대표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책략과 억지와 거짓말에 넌더리를 냈다. 비슷한 일이 북한의 핵무기를 통제하려는 회담 과정에서 다시 나왔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북한의 '국회의원'들과 협상해서 성과를 얻겠다는 발상은 너무 위험하다. 국내 정치 상황을 유리하게 바꾸어 보려는 현 정권의 계산에서 나왔으므로, 더욱 위험하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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