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가명·17)는 '문제아'였다. 별거 중인 부모님을 둔 영이는 절도·폭력 등 나쁜 짓이라고는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여러 차례 보호관찰 명령도 받았다. 그랬던 영이가 1년 남짓 가온학교를 거치며 이젠 정말 '착실한 학생'으로 변신했다. 다시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간 영이는 얼마 전 가온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한 학기 동안 지각·결석 한 번도 안했어요. 잘했죠?"라며 어린아이처럼 자랑을 늘어놓았다.
영이의 믿을 수 없는 변화를 보고 제 발로 가온학교를 찾아온 친구도 있다. 가온학교에 다니고 있는 혁이(가명·17)는 "영이가 변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올해 초 새로운 출발을 했다. 혁이는 이제 중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해 고교 진학을 바라보고 있다.
대구 중구 남산 4동에 자리잡은 '가온학교'(미인가 대안학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학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허름한 상가건물 한 층이 학교의 전부다. 운동장도 없는 아담한 교실 안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복닥거리며 함께 희망을 나누는 곳이다.
아이들의 전력은 화려(?)하다. 가출, 정학 등을 밥 먹 듯 했고 그러다보니 아예 학교에 발길을 끊은 학생들이다. 처음에는 눈빛마저 흔들렸고, 가시돋친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웠던 아이들. 하지만 이젠 "정말 이곳에서 행복을 되찾았다"고 큰 소리로 말한다.
'가온'이란 학교 이름은 '가운데'를 의미하는 것. 아이들이 아웃사이더의 삶을 끝내고 세상의 중심이 되자는 뜻으로 지었다. '대구청소년 대안교육원(원장 민천식 대구교대 교수)' 부설로 2006년 9월 처음 문을 연 가온학교는 현재 중 1부터 고 1까지의 학생 20여명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 10명은 출석부에 이름은 있지만 등교를 거부해 다니던 학교에서 '학업유예자'로 분류된 아이들. 나머지 10명은 학교 적응을 못해 위탁교육을 받으러 온 1개월짜리 단기 학생들이다.
가온학교에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인성교육이다. 한창 공부에 매달려도 시원찮을 중·고생들이지만 매일 1교시는 꼬박꼬박 독서와 명상으로 시작한다.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꿈꾸는 시간이다.
매일 오후 8~10시에는 '상근이'로 유명한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 5마리와 유기견 5마리를 데리고 두류공원을 산책한다. 방과 후 일탈을 막기 위해 시작한 수업이지만 아이들은 사랑을 주는 만큼 되돌려주는 동물로부터 오히려 마음을 위로받고 있다.
그렇다고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다음달 1일의 검정고시를 위해 막판 준비에 한창이다. 김순화 교장은 "사회 적응력을 키우는데 '학력'이 잣대가 되기도 한다"고 강조한다. 학생들도 새삼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더 이상 들러리가 아니라 자신이 수업의 주인공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혁이는 "예전 다니던 학교에서는 수업 안 들으면 포기하고 말았는데, 여기에서는 잠이 들면 깨워서 가르치고 못 알아 들으면 다시 한번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등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고맙다"고 했다.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들은 이제 다시 꿈을 꾸고 있다. 매주 금요일에 있는 인턴십 교육을 통해 '나는 장래에 뭐가 될까?'를 고민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자기 재능을 뒤늦게 발견하고 열정을 쏟아내기도 한다. 중학교 2학년 과정인 태풍이가 그런 사례다. 인터넷에만 빠져 살던 문제아가 어느 날 문득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시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태풍이는 "국어 수업은 진짜 빡세지만(힘들지만), 내가 시를 잘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라고 했다.
선생님들은 "문제아란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환경의 피해자이고, 가정해체의 희생양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사랑을 받고 관심을 받으면 분명 아이들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온학교는 증명해 보이고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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