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미대를 간다던데, 화가가 되면 어때요?" 가끔씩 받는 질문이다. "글쎄요, 힘들 건데요." 머뭇머뭇, 시원한 대답을 못해준다. 상위 3% 미만의 미술작가만이 갤러리 전속작가로 활동하며 작품판매로 생활할 뿐, 다수의 작가들은 매우 힘든 생활을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한부분이나마 잠깐 들여다보자.
닐 제니라는 미국 화가는 뉴욕에서 미술가로 성공하려면 "결혼을 하지 말며, 전업 직장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결혼을 하지 말고, 직장도 구하지 말라니? 이유인즉, 가정을 가지면 작품제작에만 집중할 수 없는 경제적, 시간적 장애물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름난 외국의 유명한 미술작가 중에는 독신 남녀들이 참 많다.
미술작가들이 결혼을 하면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인 능력이다. 무명의 작가가 작품판매가 될 때까지 적게는 5년, 많게는 10년 이상의 무수입상태가 지속된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좋은 직장(증권회사 딜러)과 세 아이를 둔 35세 가장의 몸으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고갱이, 무수입상태에서 집에 틀어박혀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그의 부인은 그가 모아둔 작품들과 자녀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훌쩍 가버렸다. 부인의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한심하고 절망적이었을까? 무명작가의 결혼생활은 배우자의 수입 없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전업 직장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파트타임을 구해야 한다. 뉴욕의 소호거리나 첼시에 위치한 레스토랑과 바의 종업원들은 대부분이 '무명 예술가들'이라고 보면 된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이 식당종업원 일이며, 시간이 자유롭고 파트타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캐리어가 성장할수록 파트타임 시간을 줄여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졸업 후 무작정 작업실을 만들고 1~2년 작업에만 전적으로 매달리는 한국의 작가지망생들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결국 이들의 성급한 시도는 오래가지 못하고 화가의 길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파트타임으로 가능한 일을 하면서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현실적인 해결 방법을 배워야 한다.
과연, 이런 현실을 알고 미술대학을 진학하는 작가지망생들은 몇 명이나 있을까? 낮에는 식당 웨이터로 전전하며, 결혼까지 포기하고 열심히 해야 만이 성공할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이 뉴욕의 현실이지만, 한국의 상황도 나쁘면 나빴지 좋지는 않다. 미술작가라는 직업은 가난하더라도 창작생활의 즐거움과, 일상에서 찾지 못하는 곳에서 행복을 찾으며, 묵묵히 살아갈 '확실한 신념'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험난한 길이다. 내게 질문하는 학부모들은 이런 현실을 알기나 할까? 혹시 미술대학을 졸업하면 모두 '낸시 랭'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최규(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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