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의사에게 불만이 있거나 높은 윤리적 기준을 요구할 때 흔히들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들이대는 것이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바로 그것인데 최근의 경제위기와 관련해 며칠 전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교수들은 학교 발행 경영 잡지 최신호(10월호)의 기고문에서 경영자의 윤리 의식과 능력이 자주 도마에 오르는 건 '경영자에게 의사나 법조인 같은 프로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경영자를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제안했다." 여기에서 같은 '프로정신'을 인정받은 법조인에 대한 두 달 전의 기사가 또 있다. "이 대통령은 8월 3일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던데 검사들도 선서가 필요한 게 아니냐?'고 했고 법무부는 검사를 새로 임용할 때 직분에 충실할 것을 맹세하는 '검사선서'를 도입했다고 8월 26일 밝혔다."
이렇게 대단하게 대접받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많이 알려진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노라.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등등." 그런데 사실 이것은 히포크라테스 원전이 아니라 1948년에 세계의사협회가 현대 감각에 맞게 새로 제정한 일명 '제네바 선언'이다.
그렇다면 히포크라테스는 과연 누구며 원전은 어떻게 되어있나? 2천500년 전에 그리스에 살았던 히포크라테스는 수대에 걸친 명문 의사 집안 출신으로, 그의 학설 중 많은 부분은 지금은 허무맹랑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와 후학들이 마무리해 집대성한 72권의 전집은 현대의학의 밑거름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의 학파들은 인간의 자연 치유력을 존중했고, 특히 의술에 의료윤리를 도입한 것으로 칭송받는다. 그런데 당시 특정 가문에서만 전승되던 의학지식을 외부인에게 줄 때 쓰던 것이라서 그런지 원전에는 상당히 배타적인 부분과 민망할 정도로 실질적인 부분들도 보인다. "나는 스승을 부모처럼 여기고 그가 어려울 때 나의 재산을 그와 나누며, 그의 자손들이 의술을 배우기를 원하면 보수나 계약 없이 의술을 가르칠 것이며, 내 아들들과 스승의 아들들, 그리고 선서하고 계약한 학생들에게만 모든 가르침을 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학교는 졸업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전을 보면 의과대학 교수들에게는 상당한 매력이 있어 보인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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