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상상 한번 해 보자.
당신이 지금 대구시장에 출마할 기회를 갖는다면 어떤 공약을 앞세울 것인가.
경제 살리기, 정주 여건과 복지 향상, 환경친화적인 녹색생명도시 만들기, 교육·문화 활성화 등 분야별로 어떤 철학에 기반해 무슨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세부적으로 들어가 날마다 우리에게 짜증을 일으키는 문제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지금 당신이 대구시장이라면 예컨대 매일매일 일어나는 도로 체증과 환경오염, 교통사고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것인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시장을 두 번 연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에 의해 뽑히는 시장이라면 여론과 인기를 정책 결정 기준의 상위에 두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특히 연임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면 여론을 거스른다는 판단이 들거나 인기를 잃을 듯한 정책은 쉽게 내동댕이칠 가능성이 크다.
답을 찾는 데 참고할 사례로 콜롬비아 보고타시(市)를 소개한다. 보고타는 20세기 들어 농촌 인구가 급격히 유입되면서 도로와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극심한 빈부격차로 시민들 사이에 깊은 골이 패었다.
엔리케 페냐로사 시장.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 동안 보고타 시장을 맡았던 그는 전제조건에 충실했다. '시장은 한 번이면 족하다'는 약속부터 했으며, 이를 지켰다. 선출직 정치인에게 어찌 보면 짧기만 한 3년의 단임이었지만 그는 보고타를 제3세계의 평범한 후진도시에서 세계적인 모범이 되는 인간친화적 도시로 격상시켰다.
페냐로사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도시 교통 체계의 혁명이다. '신은 우리를 걷는 동물, 즉 보행자로 만들었다'는 그의 철학은 현실에서 그대로 진행됐다. 대중을 거리의 주인으로 만드는 데 교통정책의 중심을 뒀다. 그가 구축한 '트랜스밀레니오' 시스템은 버스 한 대에 최대 160명을 싣고 도로의 중앙 전용차로를 고속으로 달린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300㎞를 넘어 버스와 함께 교통의 두 축을 형성했다. 이를 지원한 것은 철저한 자가용 5부제와 매주 일요일 간선도로 보행자 개방 정책이다.
정답에 근접하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어떤 정책을 도입했느냐가 아니다. 시민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정책들을 어떻게 단기간에 이뤄낼 수 있었느냐다.
페냐로사는 시장에 당선된 후 자신의 계획에 기존 연구와 사례를 보태고 재검토해 3년 동안의 도시개발계획을 제시했다. 이를 지역사회 대표들과 시의회에 설명해 공식 승인을 받았다. 즉시 관련 부서의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새로운 기구를 만들었다. 명확한 철학을 바탕으로 '속도전'을 전개한 것이다.
제도 시행 초기 어려움은 그도 피할 수 없었다. 날마다 승용차 운전자들과 전쟁을 벌여야 했고 탄핵 위협을 받을 정도로 극렬한 저항에 맞서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화를 몸으로 느낀 시민들이 하나둘 그의 정책을 지지하기 시작했고, 후임 시장들까지 정파에 관계없이 그의 정책 근간을 유지하게 만드는 위업을 이루었다.
다시 대구로 돌아와 보자.
대구를 국내 4위 도시로 만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지도자는 어떤 철학과 신념을 가져야 하는가. 지금 대구 시민들에게 필요한 문제 제기와 토론은 여기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 위기일수록 대응보다 원칙을 앞세우고, 각론이 아니라 본론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답이 보인다.
김재경(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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