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3시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김밥집. 4인용 탁자 두 개만으로도 꽉 차 보이는 16㎡(약 5평) 남짓한 식당 안은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가게 앞에도 음식을 사가려는 손님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가게 벽면에는 개당 500원짜리 '땡초김밥' '멸치김밥' '고추김밥' 등 간단한 메뉴가 적혀 있었다. 보통 김밥의 3분의 1 크기인 미니 김밥이 이 가게의 주력 상품. 김주민(30) 사장은 "부산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누나가 초미니 김밥을 파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경기침체로 호주머니가 가벼워진 점을 공략한 게 주효했다"고 했다. 이 가게는 개업 5개월 만에 반월당에 2호점을 열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IMF형 초저가 상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는 물론이고 2천원대 자장면이나 대패 삼겹살, 1천원대 돈가스 등이 재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미니 가습기나 정수기, 1천원숍 등 저가제품들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대구의 한 중국음식집은 최근 가게에서 음식을 먹는 손님들을 위한 '홀 자장면' 메뉴를 개발, 2천원에 팔고 있다. 배달원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었지만 이것이 히트를 쳤다. 이곳 업주는 "자장면 가격을 내리고 난 뒤 홀 손님이 세 배가량 늘었다"고 귀띔했다.
대학가에는 1인분에 1천900원짜리 돈가스도 등장했다. 지역의 한 대학 앞에서 4개월째 '천냥 돈가스' 점포를 운영 중인 김모(38)씨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 불경기가 매출의 일등공신"이라고 말했다. 이미 서울과 부산에서는 대박 창업아이템으로 불리며 조만간 대구에서도 그 수가 늘 것이라고 김씨는 자신했다.
중구의 한 고깃집은 한동안 메뉴판에서 빼버렸던 '대패 삼겹살'을 새로 추가했다. 업주 박모(51)씨는 "1인분에 2천500원짜리 대패 삼겹살을 선보인 이후 매출이 30%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영남외식연구소 임현철 소장은 "요즘 외식산업 경향이 IMF 때와 비슷하게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며 "지난해까지 유행했던 고가 음식점보다는 싼값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IMF형 소비행태는 공산품도 예외가 아니다. 중구 반월당의 한 천냥백화점은 밀려드는 손님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주부 조모(51·북구 칠성동)씨는 "예전에는 백화점에서 주방용 그릇과 찻잔 등을 구입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천냥백화점에서 대부분 사고 있다"고 말했다.
종합가전매장에서도 1만~ 2만원대 미니 가습기, 1만~3만원대 미니 재봉틀에서부터 10만원대 미니 정수기, 40만원대 미니 노트북까지 저가형 상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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