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모금 사기 극성…'추운' 복지단체 한번 더 울린다

김동철(38·경북 경주)씨는 지난달 중순 한 결식아동 지원단체 관계자로부터 "5만원이면 겨울방학 동안 결식아동이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금액이니 후원을 해달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좋은 취지다 싶어 승낙한 김씨는 열흘 뒤 깜짝 놀랐다. 자신 앞으로 도착한 소포를 열어보니, 우편엽서 60매와 함께 비용 5만원을 보내라는 지로용지가 들어있었던 것. 김씨는 "지로용지에는 '함께 사는 ○○○○'이라는 봉사단체 명칭이 적혀있었지만 실제로는 통신판매업체였다"며 "기부하려는 선의까지 희롱하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복지단체를 사칭한 '가짜 불우이웃돕기'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제불황의 영향으로 해가 갈수록 사회복지시설에 찬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이런 '짝퉁 복지단체'들이 횡행, 그나마 남은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박진수씨(30·수성구 황금동)도 최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연말 노인복지에 쓰일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물품을 보낼테니 지로용지에 적힌 금액을 은행에 납부해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며칠 뒤 박씨가 소포로 받은 물품은 고사성어집. 시가 5천원도 안 돼 보이는 200여쪽 분량의 책자였지만 지로용지에는 자그마치 6만원이 찍혀 있었다.

'함께 사는 ○○○○'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평생교육법인은 자신들의 명칭과 같은 단체가 복지단체를 사칭, 영업을 한다는 것 때문에 이름을 바꾸고 홈페이지에 안내창까지 마련했다. 법인 관계자는 "난데없이 '기부문화를 장삿속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항의 전화를 받고 기가 막혔지만, 해명할 길이 없어 결국 단체 명칭을 바꿨다"고 전했다.

이처럼 연말마다 선의를 악용한 기부금 모금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피해 접수 사례는 거의 없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피해 사실을 뒤늦게 알았더라도 '소액인데…' '좋은 일에 썼을 것'이라고 치부하며 가볍게 넘겨버리기 때문.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복지단체를 사칭, 기부금 명목으로 지로용지를 보낸 뒤 기부금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면 엄연한 사기죄에 해당한다"며 "주 목적이라고 밝힌 '불우이웃돕기'에 쓰이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 관계자는 "좋은 일에 쓰면 됐지, 굳이 이름을 밝힐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짝퉁 복지단체'를 키우고 있는 것 같다"며 "기부를 할 경우 기부금을 받을 수 있도록 등록된 단체인지 행정안전부나 광역자치단체에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대구소비자연맹 박수진 상담팀장은 "복지단체를 사칭한 가짜 모금행위로 의심될 경우 업체에 일단 전화를 해보고 확인해봐야 한다"며 "그래도 의심이 들면 국세청에 '공익성기부금단체'로 등록된 곳인지 확인한 후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받는 것도 피해를 막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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