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화합'을 먼저 배우자

어느 단체의 어떤 리더라도, 선거 후 당선과 동시에 '화합'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오바마도 마찬가지였다. "흑인도 백인도 없는 우리는 하나일 뿐"이라고 화합을 강조했다. 이 같은 풍경은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사이좋게'라는 단어 선택만 다를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화합하지 못하는 것일까.

첫딸은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함께하는 인간의 모습, 즉 전인적인 인간상을 위한 교육에 절대적으로 치우쳐야 하는 유치원 교육이 '선행 학습'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 초등수학을 가르치고, 한문을 가르치는 모습이 못마땅했다. 영국 이튼스쿨 등 세계 명문학교들은 교과 과정의 절반 이상을 체육과 합주를 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이들 학교는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은 함께 혹은 더불어 살아가는 소양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목적의식이 뚜렷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경쟁에만 치중하고 있다.(솔직히 얼마 전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경쟁은 타인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와 하는 것이 아닌가?) 악기를 배워도 합주보다는 독주를 잘 하기 위해 배운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 혼자의 생각일까.

어느 심리연구소에서 사회생활 중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인가를 질문했다. 압도적으로 많은 답이 '조직원 간의 갈등'이었다. 더 나아가 그 조사에서는 '조직원들 중 미워하는 사람이 90% 이상이며, 존경하는 사람은 1%도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이유를 묻는 답에는 '상대가 이해심이 부족하기 때문'과 '자기밖에 모르는 풍토 때문'이라는 답이 80%를 넘었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할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40% 이상의 조사대상자들이 '아예 모른 척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화합은 차치하고, 외면하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모든 리더들이 '화합'을 강조하는데 왜 우리는 분열하는 것일까? 우리는 진정 '화합'을 위한 학습을 접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러다 보니 당연히 '관대'와 '관용'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살아간다. 언젠가부터 나는 '정의'를 외치며 '분열'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잘못을 덮고 용서하자는 것은 아니다. 설득과정의 땀방울과 힘든 소통의 길을 걸어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미덕을 배우자는 것이다. 자세히 알아서 가까워지고 보면 나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바마의 당선을 '젊은 나이에 관용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어느 언론의 분석이 와락 와닿고 '관대한 자에게는 적이 없다'는 속담 또한 더 크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서동훈(대구미래대 영상광고기획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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