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달력·판촉물 주문 뚝…인쇄업계 '연말특수' 실종

▲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캘린더 주문이 지난해에 비해 30% 정도 줄어들었다. 대구의 한 달력 제작업체에서 2009년도 달력을 제작하고 있지만 불황으로 직원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김진만기자
▲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캘린더 주문이 지난해에 비해 30% 정도 줄어들었다. 대구의 한 달력 제작업체에서 2009년도 달력을 제작하고 있지만 불황으로 직원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김진만기자

"한창 캘린더 주문 제작으로 일손이 바빠야 할 인쇄 성수기인데도 주문이 없어 이렇게 놀고 있네요."

7일 낮 대구시 중구 남산동 인쇄골목의 한 인쇄소에서 만난 한 직원은 일감이 없어 사장님 보기 미안할 정도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매년 이맘 때면 그간 부진했던 일반 인쇄물 수익을 '캘린더(calendar)' 제작을 통해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지만 인쇄골목 상인들의 표정은 경기침체를 반영하듯 밝지가 않았다.

◆인력·기계 모두 놀리는 곳 많고

K기획인쇄사 박모 부장은 "불과 몇년전만 해도 10월말부터 2천∼3천개의 달력을 주문받았지만 올해는 경기침체를 반영하는지 금융회사나 기업 등에서 주문이 없고, 오랫동안 거래해 왔던 사찰에서 주문한 한 건 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쇄사에는 달력 주문의 거의 없고, 광고 전단지와 판촉물 등 일반 인쇄물도 주문량이 예년에 비해 30% 이상 줄었다"면서 "수억원의 돈을 들여 인쇄기계를 4칼러가 가능하도록 증설했는데 물량이 없어 기계도 놀리고 기능장도 놀리고 있는 것이 요즘 인쇄업계"라고 분위기를 소개했다.

또다른 인쇄소 사장은 "해마다 인건비와 종이·잉크값 등 재료비는 30∼40% 정도 껑충 뛰는 대신 인쇄 단가는 5년전 그대로인 탓에 많은 인쇄업자들이 기계나 기능장을 놀릴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기계를 돌린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는 "경기 침체로 기업들이 인쇄 물량을 줄이면서 일감이 격감하자 인력을 줄이고 기계를 팔려고 내놓은 인쇄소도 있다"고 말했다.

3, 4년전만 해도 옵셋트 기능장들 구하기가 어려웠지만 일거리가 줄어들면서 일감이 줄면서 업계를 떠난 사람들도 꽤 있다고 했다.

◆주인 1명만 일하는 곳도 늘어

기능장들을 내보내고 기계 한 대에 주인 한사람이 붙어 일하는 곳도 많아졌다. S인쇄소 직원은 "예전에는 여러명의 직원이 1시간당 5천장 인쇄했다면 요즘은 1, 2명으로도 시간당 수만 장을 인쇄할 수 있을 정도로 기계가 발전했고, 남산동 인쇄골목에도 4칼러를 인쇄할 수 있는 기계가 줄잡아 100대는 넘어 과당경쟁으로 물량을 수주받기 위해 덤핑도 불사한다"고 말했다.

컴퓨터와 복사기의 보급이 늘어나고 사무자동화가 되면서 인쇄 주문량도 크게 줄어들었다. 왠만하면 이들 사무용품은 인쇄소에 맡기지 않고 자체 해결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가격 등이 노출되면서 인쇄소들의 마진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도 업계의 침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심해지는 양극화

특히 인쇄업은 전문화, 양극화가 심해졌다. 인쇄골목의 영세한 인쇄사는 매출이 뚝 떨어지는 반면 비교적 규모가 크고, 대기업 제품설명서나 상업용 판촉물이나 전단지 전문 인쇄를 하는 큰 10여개 회사는 전반적으로 물량이 줄어들어도 꾸준히 일거리가 있다. 일일 5만부의 탁상용 캘린더를 생산할 수 있는 기계를 증설했다는 (주)대성카렌다 김재국 대표는 "지역에서 비교적 많은 부수의 달력을 제작하는 금융회사나 기업체들이 서울업체에 의뢰하는 바람에 전체 달력 수요의 70∼80%(40억∼50억원 추산)는 서울로 주문을 하고 있는 반면, 우리 회사가 맡은 전체 주문량의 60% 정도는 오히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주문을 하는 역류현상이 심화됐다"면서 "지역 경기 활성화를 위해 지역 업체에서 지역 인쇄업계에 보다 많은 주문을 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달력보다는 다이어리 업체가 더 어려워

달력 제작업체보다 사정이 어려운 곳은 다이어리 제작 업체들로, 지역의 많은 기업들이 서울로 주문을 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이어리 제작사 관계자는 "기업체등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보면 서울의 대형 업체에 주문을 하면 더 빨리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데 굳이 대구에서 주문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때 답답하다"고 말했다.

한 인쇄소 사장은 "오랜 역사를 가진 인쇄골목이 그동안 지역경제의 파수꾼이었다는 자부심을 가졌었다. 하지만 시대 변화와 고객의 요구에 따라 인쇄업도 고급화, 전문화되어 가는 추세에서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지만 많은 영세업자들이 기계설비에 10억원에 가까운 투자를 하기 어렵다. 하던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계속하자니 경쟁력이 떨어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막막해했다.

대구경북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박희준 이사장은 "대구의 인쇄출판업 활성화를 위해 각종 국제 인쇄 관련 박람회 참가 등을 통해 해외시장으로 수출을 모색하고, 대구시와 조합이 2011년까지 남대구IC 일대에 24만5천㎡ 규모로 출판문화산업단지를 조성해 200여개 인쇄출판업체를 집적시켜 활로를 찾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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