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소기업 돈 구하기 왜 힘든가 했더니…

은행 "사고 땐 책임지라" 지점장들 압박

# #1 "정부와 중앙은행이 매일같이 지원책을 쏟아내는 데도 정작 은행에 가면 돈이 없어 빌려 줄 수 없답니다. 이자 내린다는 발표와 달리 실질이자는 오히려 올라요. 경기부양책은 말뿐입니다." (중소기업인 A씨)

#2 "대출신청하러 오는 중소기업인을 비롯한 고객들은 많습니다만 안심하고 빌려주기가 힘듭니다. (해당업체의 현실을 감안하면) 떼일 각오를 해야 하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대출승인을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본점 눈치도 보이고요…." (은행지점장 B씨)

정부와 한국은행이 총액한도대출 규모를 확대하고 이자율을 낮추는 등 잇따라 금융위기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시중의 자금사정은 더욱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들은 "보증기관 보증서를 들고가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불만이고, 은행 창구에서는 "우리도 자금여력이 없다"며 금고문을 오히려 걸어 잠그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포항시는 지역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시중 자금사정을 조사했다. 철강공단, 청하농공단지의 50여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대다수 업체들은 "자금사정이 너무 어렵다"고 답했다.

시청 공무원들은 기업인들로부터 "담보내용이나 보증서 내용은 의미가 없다. 일단 빌려주지 않겠다는 것이 은행들의 기본입장이라고 하더라"는 한결같은 경험담을 들었다. 또 "불과 1, 2개월 전만 하더라도 신뢰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쳐주던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서나 아파트를 담보물로 제시해도 2억원 이상 빌리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이렇게 해서는 유동성 위기를 뚫고 나가기 어렵다"는 말도 기업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쏟아내는 말이었다.

반면 금융기관들은 "'빌려주기 싫은 게 아니고 자금여력이 없다'는 현실론으로 맞서고 있다"고 공무원들은 전했다. 포항시청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내려주는 돈이 유동성 확보에 나선 대기업들 몫으로 중간에서 빠지면서 지역 점포에 오는 돈은 규모도 작고, 대출이 이뤄지기까지 과정도 어렵고 복잡해 지점장들이 빌려주겠다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한 은행 지점장도 "우량고객인 대기업의 부탁을 외면했다가 어떻게 다칠지 몰라 그쪽 눈치만 보고 있다"고 했고, 다른 한 지점장도 "대기업에 빌려주면 대출실적을 채우고 심리적 부담도 덜해 시선이 그쪽(대기업)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일부 은행들의 경우 최근 연체증가·부도 등으로 피해를 입자 담당 지점장이나 직원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겠다거나 '책임져라'는 식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하면서 사실상의 대출억제를 유도하는 것도 기업들의 자금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대출기피는 지방은행보다 서울에 본점을 둔 시중은행이 더 심한 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박승호 포항시장은 "자치단체가 보증인 역할을 해서라도 자금사정을 풀어야 할 처지"라며 "중앙은행이 일선 은행들의 대출관행을 직접 체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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