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밑 빠진 독 채우기'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 중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영상물이 있다.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출연자는 생맥주를 나르는 20대 점원이었다. 방송사는 그가 얼마나 빨리 많이 생맥주 컵을 옮길 수 있는지 실험(?)하기 위해 50리터들이 통에 구멍을 뚫어 놓은 뒤 물을 가득 채우라고 주문했다. 놀랍게도 그는 '밑 빠진 독에 물 채우기'라는 '희한한 임무'를 거뜬히 완수했다.

이 동영상을 통해 밑 빠진 독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이 채워진 것은 일순간일 뿐, 이내 물이 모두 빠져나가 그 독은 다시 비워졌다.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의 금융부문뿐 아니라 실물 경제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듯 돈을 쏟아 부으면 되겠으나 미봉책인데다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그래서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15일 미국 워싱턴에 모여 난국 타개를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각국의 이해가 엇갈려 국제통화기금(IMF)으로 대변되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재편과 새 금융규칙 제정이란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달러 가치의 급속한 하락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수출 주도 성장 모델을 고수하며 달러화에 대한 자국 통화의 가치를 저평가 상태로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의 은행'(미국)과 '세계의 공장'(동아시아) 사이의 이러한 불균형 무역거래 역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로 조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개 동물들은 제 배를 채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먹고 남아 썩어 버릴망정 따로 비축한다. 이처럼 인간의 욕망은 그 끝이 없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자유경쟁을 통해 인간의 무한 욕망을 극대화한 시스템이다. 끊임없이 자원을 낭비하면서까지 확대 재생산하지 않으면 탈이 난다. 자본주의의 대항마였던 공산주의가 몰락한 뒤 아직까지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인간이 욕망을 제어하는 시스템을 찾아내거나, 새 패러다임을 구축하지 못하면 지구 자원의 고갈을 초래하면서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밑 빠진 독'을 걷어차고 '새 독'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조영창 북부본부장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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