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전쟁기획자들/서영교 지음/글항아리 펴냄

시장은 전쟁을 낳은 자궁인가

AD 6세기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는 비단을 통해 세계무역을 이끈 초강대국이자 최대 부국이었다. 수는 비단의 흐름을 방해하는 주변 나라들에 대한 정리에 들어갔다. 실크로드의 요충지를 지배하던 토욕혼(몽골계 유목민인 선비족(鮮卑族)이 세운 나라)이 수군에 의해 정복되었고, 타림분지가 그 수중에 들어갔으며, 서역의 왕들에게까지 입김을 미쳤다. 중국의 번영을 과시하기 위해 가로수에 비단을 휘감아 그 성대함을 과시할 정도였다. 이로써 더 풍부한 서역의 물산이 중국으로 유입되었고, 수 왕실의 재정은 풍요해졌다.

석유 거래를 오로지 달러화로만 결제하도록 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다. 모든 나라들이 달러화를 필요로 하는 한 미국의 위상은 견고해진다. 미국은 적자를 달러화 발행으로 보충했다. 그런데 이런 미국에 반기를 든 사나이가 있었다. 바로 이라크의 후세인이다. 그는 "앞으로 이라크 원유 결제 통화를 달러화에서 유러화로 전환하겠다"고 2000년 선언했다. 이란과 인도네시아가 동조할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은 달러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F16 전투기와 에이브럼스 탱크를 동원했다.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킨 미국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석유수출 결제 대금의 달러화 환원이었다.

'수요가 있는 한, 다이아몬드의 핏물은 빠지지 않는다.'

시장은 전쟁을 낳는 자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은 첨예하고 말초적인 시장본능에 의해 만들어졌다. 국가든, 개인이든 전쟁을 벌이는 바이러스는 언제나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1500년 전 동로마 전쟁도, 불발된 2004년 남아공 쿠데타도 개인이 기획한 전쟁이었다. 폭등한 비단과 석유의 수요가 그 배경이다. 20세기를 지나면서 한때 이념을 위한 냉전 이데올로기가 창궐했지만, 수 천년의 역사로 볼 때 극히 예외적인 짧은 기간에 불과했다.

고대사와 전쟁사를 전공한 지은이는 33곳의 격전지를 통해 전쟁과 시장이 어떤 방식으로 깊숙이 연루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자본에 충실한 이라크 미군 용병, 다이아몬드를 노리는 전쟁 기획자들, 빈 라덴에 끌려들어간 '혈우병 환자'와 같은 미국, 무기산업의 매력, 뇌물을 좇아 세계시장을 누비는 사우디 왕자들, 곡물 마피아 등 고도로 전문화되고 기업화된 전쟁자본과 그 뒤에 도사린 전쟁 두뇌의 실체를 밝힌다.

이와 함께 정주영과 광개토대왕, 이병철과 장보고, 최충헌과 수하르토, 김우중과 의자왕, 이건희와 장수왕 등 역사 속의 전쟁 두뇌와 현대 '경제 격전지'의 수장들의 차이와 공통점도 비교 분석했다.

지은이는 "전쟁은 불가피하게 일상화된 시장의 자기 조직적 전개로 파악해야 된다"고 했다. 인간이 존재하고, 인간이 만든 시장이 살아 있는 한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의 원인보다는 전쟁의 기획, 시스템, 승부처와 그것을 수행하는 에이전트들의 활동에 초점을 맞춰 파악하는 것이 세계를 이해하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368쪽, 1만5천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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