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당 외환은행 옆 작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막걸리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학사주점·삼거리주점·흥부주점·동창·무심천·시인과마을 등 막걸리집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이 곳에 대구를 대표하는 대폿집, 행복식당이 자리잡고 있다. 주인장은 신현월(여·58)씨다. 충남 강경 출신으로 35년 전 대구에 와 직장생활을 하다 1987년 행복식당을 열었다. 처음에는 지금 위치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2003년 이전했다.
20여년이 흘렀지만 행복식당은 막걸리 한잔에 시름을 잊고, 좋은 벗을 사귈 수 있는 한결 같은 위치를 지키고 있다. 특히 단골 손님 가운데 지역 예술인들이 많아 대구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문을 연지 처음 10년까지는 문인들이 많이 찾아왔다. 전상렬·서석달씨를 비롯해 조기섭·권기호·도광의·금동식·이수남·윤장근 등이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밤새 인생과 사랑, 시와 소설을 이야기했다. 10년이 지나면서 대구시청과 경북도청 공무원들, 전문산악인들도 단골 고객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미술인, 음악인들도 행사 뒷풀이 장소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행복식당을 찾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오랫동안 발걸음을 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 보기가 쉽지 않다. 주인도 젊은 손님들이 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술집 분위기와 맞기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연령대가 많이 낮아졌지만 과거에는 40대도 젊은 축에 들 정도였다고 한다. 손님의 대부분은 주당들이다. 예술인들 가운데 술꾼들이 많기로 유명한 문학인, 미술인들이 많이 오는 이유다. 행복식당에서 한 잔 걸친 사람들은 지금은 없어진 대폿집 은정식당 등으로 자리를 옮겨 밤새 술을 마셨다. 지금은 풀하우스와 행복식당을 주로 오간다.
행복식당 막걸리 한병 가격이 20년 전 500원에서 지금은 2천500원으로 다섯배가 올랐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행복식당 손님은 다섯배 늘지도, 다섯배 줄지도 않고 늘 일정한 수준이다. 그동안 많은 막걸리집들이 생겼다 사라졌다. 경제가 어려운 요즘, 부침 현상은 더 심하다. 그러나 행복식당에는 불황이라는 단어를 찾기 어렵다.
원인은 무엇일까? 주인이 부침성 있게 손님을 대하는 것도 아니다. 술이 많이 취한 손님에게는 술을 팔지 않고 내쫓는다. 심지어 타박까지 한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집에 오는 손님들 건강도 생각해야지요. 술 못마시고 쫓겨날 당시에는 섭섭해 하던 손님들도 술이 깨고 나면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합니다." 신씨는 욕심 내지 않은 것이 경기 영향 받지 않고 오랫동안 장사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르지 않는 것은 월급뿐'이라는 고물가시대, 1만원이면 맛있는 안주에 막걸리까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점도 행복식당의 장점이다. 게다가 계절 안주가 나온다. 양미리가 많이 잡히는 요즘에는 양미리 안주가 제격이다. 기본 안주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들깨 볶은 것이다. 주인이 행복식당 특별 안주라고 추천하는 것이다. 365일 문을 여는 것도 특징이다. 신씨는 "손님들이 일요일 하루 날잡아서 쉬라고 해 놓고 오히려 찾아온다"며 즐거운 불평을 늘어 놓았다.
술 손님이 없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밥(정식)을 판다. 대폿집을 시작했던 초기 혼자 사는 한 문인이 늘 밥 대신 술 먹는 것을 보고 식사를 대접한 것이 정식을 팔게 된 계기가 됐다. 주변 상가 주인, 봉급생활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정식 가격은 4천원선이다. 하지만 '싼게 비지떡'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명 커피전문점 커피 한잔 가격도 안되지만 밥과 국에 딸려 나오는 반찬은 무려 12가지다. 기본으로 나오는 고등어·갈치 등 생선구이와 김치 외에 제철 반찬을 맛깔스럽게 담아낸다. 봄에는 상큼한 봄나물이 입맛을 돋운다. 4천원으로는 타산이 맞지 않지만 가격을 올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손님 모두를 식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씨는 "대구는 제2의 고향입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행복하게 장사를 했으니 즐거운 마음뿐입니다. 행복식당을 찾아 주신 모든 분들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 남은 인생 더욱 성실히 살겠습니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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