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보카지구는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문화명소다. 낡고 오래됐지만 형형색색 화사한 색깔로 장식된 바에는 관능적인 탱고리듬이 흐르고 거리의 화가들과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선 골목길에는 기념촬영에 바쁜 관광객들이 넘친다. 하지만 옛날 이곳은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이민자들이 모여 이룬 조선소와 도살장, 부두노동자들과 선원들,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는 선술집과 창녀들로 북적이는 지저분한 항구에 불과했었다.
이런 곳을 오늘날의 국제적 관광지로 만든 것은 바로 탱고였다. 필자는 보카지역을 둘러보면서 만약 탱고가 없었다면 이곳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평범한 항구에 불과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상 보카지역의 환경은 매우 열악한 편이다. 물류하역장이 있는 바다는 각종 쓰레기로 늪을 이뤄 악취가 진동하고, 관광구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은 빈 집들도 많을 뿐 아니라 매우 쇠락해 있다. 대낮이지만 관광구역 외에는 남자들도 다니기 위험한 지역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보카지역의 대부분은 슬럼지역이고 그 중 일부가 탱고로 인해 관광지로 변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탱고가 없으면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찾을 관광객이 몇이나 되겠는가. 대낮에도 소매치기들이 활개치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이다.
보카지역과 같이 국제적으로 유명한 문화명소는 대부분 예술가들에 의해 키워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뉴욕의 소호, 베이징의 따산쯔 798 미술특구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들 입장에서는 그곳이 비록 일반인들이 기피하는 슬럼지역이라 할지라도 예술활동을 위한 적절한 동기부여가 주어진다면 마다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그들은 작품을 창작하고 발표하면서 예술적인 놀이터로 만들어 간다. 예술활동이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으로 형성될 때쯤이면 사람들은 호기심과 재미를 찾아 모여든다.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차츰 식당, 상점, 숙박업소 등 상권이 형성됨으로써 지역활성화의 거점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있다. 인사동, 대학로, 홍대지역이 바로 그런 곳이다.
예술을 통한 도시 활성화 전략은 해당도시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살려나가는데 있어서 예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설정한다는 것이며, 예술적 방법을 통해 도시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찾아 해결하고 도시의 긍정적인 기능들을 살려나가는 전략을 말한다.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역문화자산의 현황과 그것을 창출하는 다양한 주체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하고, 예술활동이 도시의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물질적·제도적 여건을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다양한 지역주체들(주민-상인-예술가-지방정부)을 조율할 수 있는 문화매개집단을 잘 세워 자율적 운영시스템을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김윤환 대구문화창조발전소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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