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깜짝 선물

지난 2005년 북한 당국이 외국 기자단에게 선심을 썼다.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외국 정부나 유명인사로부터 받은 선물 29만6천 점이 전시된 묘향산 인근의 국제친선전람관을 공개한 것이다. 당시 AFP통신은 안내원이 1945년 스탈린이 보낸 방탄 열차 차량에서부터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곰 머리 박제, 미군 군용기 잔해로 만든 라오스 수파누봉 왕자의 팔찌까지 갖가지 선물들을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선전하더라고 했다.

역대 우리 대통령들도 외국 정상이나 VIP 예방시 의례적으로 선물을 주고받는다. 주로 은제 거북선, 성덕대왕신종이나 천마총 금관 재현품, 청자'백자문병, 하회탈 액자 등을 선물하고 있다. 반면 받은 선물 목록을 보면 푸틴 전 러시아 대통령의 사냥총과 탁신 전 태국 총리의 노무현 대통령 초상화, 몽골 대통령이 선물한 게르까지 각양각색이다. 정부 규정에는 시가 10만 원 이하의 품목을 제외한 모든 선물은 국고에 귀속, 국립민속박물관에 보관하도록 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305달러 이하의 선물은 개인이 가질 수 있다.

며칠 전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만화광'으로 알려진 아소 일본 총리가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게 장난감을 선물했다는 소식이다. 1969년 첫선을 보인 이후 96년 작가가 죽을 때까지 계속 발표한 일본 장편만화의 캐릭터인 '도라에몽' 장난감이었다. 메드베데프의 아들이 도라에몽 팬이라는 사실을 알고 북방영토 문제 등 러시아의 협조를 구해야 할 처지인 아소 총리가 깜짝 선물을 안긴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을 때 기분은 선물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다. 실무적이 될 수밖에 없는 양국 정상외교가 화기애애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24일 우리 국민도 선물 아닌 선물을 받았다. 북한의 남북 교류 중단이라는 '생떼 선물'이다. 우리는 과거 10년간 수조 원에 달하는 돈과 물자를 '햇볕' '인도적'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에 선물했다. 그렇게 퍼주고도 되레 뺨만 얻어맞은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선물을 뇌물로 여기지 않고서야 이런 몰염치한 경우가 있을까. 작은 선물로 상대의 마음을 얻어 큰 것을 도모하는 기지를 발휘한 일본 총리로부터 북한 정권이 배워도 한참 더 배워야 할 것 같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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