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시작해 오리건, 워싱턴주를 지나 캐나다까지 이어지는 캐스케이드산맥은 수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이어 달리는 경치가 장관이다. 아직 땅 위에는 노랗고 빨간 단풍잎들이 저마다 고운 빛깔을 자랑하기에 바쁘지만 저 멀리 보이는 산 정상은 벌써 설국(雪國)이다.
시애틀에서 출발한 지 3시간. 고갯마루를 내려서니 갑자기 경치가 바뀐다. 온통 사과밭이다. 'Apple Capital of the World'(세계 사과의 수도)라는 안내판이 사과 주산지, 웨나치(Wenatchee)에 왔음을 알린다.
워싱턴주는 미국 사과 생산량의 60% 가까이 차지하는 대표적인 과일산업 중심지이다. 가장 많이 재배되는 사과품종은 레드 딜리셔스와 부사(후지)이며 배와 체리도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다. 하지만 이곳이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은 정밀농업의 적용 실험 때문이다.
이곳에서 연구하고 있는 대표적인 정밀농업 기술은 동해(凍害) 예방을 위한 무선 센서네트워크(Wireless Sensor Network). 지형 등을 이유로 농장 내 각 지점마다 다른 온도를 실시간으로 파악, 농부들이 즉시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다른 농작업기계 개발도 활발해서 작업능률을 높이고 있다.
워싱턴 과수연구위원회(WTFRC)의 짐 맥퍼슨 박사는 "옥수수·콩 등에 비하면 과일산업에서 정밀농업은 초기단계이지만 수년 내에 바뀔 것"이라며 "많은 과수원이 인력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노동력을 줄여줄 수 있는 정밀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수원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려는 정밀농업 연구는 워싱턴주에서 미 본토 대각선 끝에 있는, 미국 최대 오렌지 생산지역인 플로리다주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미국 정밀농업 학자 중 유일한 한국인 교수인 이원석(46) 박사가 이끄는 플로리다주립대 정밀농업실험실에서는 변량 농약·비료처방, 자동화기계 디자인, 센서 개발뿐 아니라 머신 비전(Machine Vision)이라 불리는 영상처리기술과 농산물의 광학특성을 이용해 수확량을 측정하는 기술도 거의 상용화단계까지 눈 앞에 두고 있다.
이 기술은 빛이 물체의 종류와 상태에 따라 반사되는 파장 대역과 반사 정도가 달라지는 점을 활용한다. 각 위치별로 여러 가지 광학필터로 사진을 찍은 뒤 종합판독하면 오렌지 나무의 나뭇잎과 오렌지를 구분해낼 수 있어 수확량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모든 지점의 기록은 GPS(지구측위시스템)를 이용해 저장, 다음해의 영농계획에 활용하게 된다.
이 교수는 "실험 결과 정확도는 85%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과수원의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한다면 농민들은 한층 정밀하게 인력 확보, 농자재 투입 등의 준비를 할 수 있고,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농지 각 부분의 특성을 손바닥 보듯 파악해 대응하는 정밀농법은 이제 농가의 성공에도 필수적이지만 농업 통계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연방정부에서 운영하는 랜드샛(Landsat ) 위성을 활용한 원격탐사기법으로 지상의 각종 농업 인프라를 분석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올해 첫 시범실시됐다.
국내 인공위성 원격탐사에 쓰이는 위성은 2006년 우주로 쏘아 올려진 아리랑 2호. 지구상공 685㎞의 궤도를 돌면서 지상의 가로 세로 1m 크기의 물체를 1개의 점으로 표시하는 고해상도를 가진 1m급 카메라를 이용한다.
통계청 박재화(36) 농어업생산통계과 사무관은 "현장조사 위주로 농업통계를 작성할 때보다 인력과 예산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올해 김포·연기·김제지역에서 얻은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내년에는 5개 시군, 2010년에는 광역자치단체, 2011년에는 전국 단위의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주 웨나치·플로리다주 게인즈빌에서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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