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아련한 추억 속 교실의 나무난로

초등학교로 이름이 변경되기 전인 국민학교 시절 5학년 겨울. 각 교실마다 나무난로를 대신해 편하게 작동이 가능한 석유난로가 보급됐다. 하지만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굳이 나무 난로를 고집하셨다.

'석유난로가 더 따뜻하지 않을까? 나무난로는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재 치우려면 귀찮은데… 일거리를 없앨 수 있는 기회인데 그걸 왜 고집하시지?' 반 친구들 모두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께서는 우리들의 걱정을 깔끔히 없애주셨다. 아이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고 지시하기보다는 솔선수범해 나무도 나르시고 재도 치우셨다.

특히 나무난로에 불을 지피는 솜씨는 거의 경지에 다다른 수준이었다. 어떻게 조금의 연기도 없이 불을 지피실 수가 있을까? 옆 반 친구들은 석유난로에서 나는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고 두통을 호소하기도 했는데, 우리 반은 쾌적한 공기 속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남은 숯불에다 직접 가져오신 고구마로 우리들의 간식을 챙겨주시기도 했다.

우리 반 성적이 밑바닥일 때는 아이들 책가방을 모두 모아 나무난로에 집어넣고 불을 지핀다는 으름장으로 우리들을 놀래킨 적도 있었다. 개개인별로 걱정해주시고 챙겨주셨기에 꼭 자상한 아버지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6년 동안 가장 인상에 남는 선생님으로 기억됐다.

이후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한번 찾아뵈어야지 하던 것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미루게 됐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새로운 학교생활 적응하랴 공부하랴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가 결국은 찾아뵙고 싶어도 찾아뵐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항상 오토바이를 타고다니셨는데, 교통사고 뺑소니로 숨지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찾아뵐 수 있는 거리에 계셨는데 왜 그걸 미뤘을까? 아무리 후회해도 시간은 돌이킬 수 없었다. 변변한 사진 하나 없는데, 졸업앨범의 사진이라도 보며 열한 살 학교생활을 추억해 봐야겠다.

"선생님, 일찍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 다음 생애에 혹시 연이라도 닿으면 이렇게 후회할 일은 하지 않을게요. 그곳에서도 항상 행복하세요."

박해옥(대구 달서구 송현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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