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로가에 서 있는 차들을 보면 이상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승용차는 트렁크를, 1t 화물차는 뒷문을 열어 둔다. 누구는 수건을 늘어놓고, 다른 누구는 가림막을 세워두기도 한다. 물 묻힌 종이를 번호판에 붙여 두기도 하는데 모두 한가지 목적을 위해서다. 차량번호판을 가려 보자는 꼼수다. 지난 2006년 불법 주정차 단속에 감시카메라(CCTV)를 장착한 이동식 단속차량(이하 단속차량)이 도입되면서부터 생겨난 현상이다. 단속반원이 차에서 내려 사진 찍던 것도 이젠 뜸해졌다. 이로 인해 다툼하던 운전자도 보기 힘들어졌다. 주·정차 단속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행태도, 길거리 모습도 바꾸어 버린 단속차량을 들여다봤다.
◆움직이는 단속본부
지난 10일 오후 4시 대구 중구청 교통과 단속 반원과 함께 단속차량에 올랐다. 스타렉스 승합차를 개조한 단속차량은 장비로 가득 차 비좁았다. 단속반은 2인 1조로 운영된다. 한명은 운전하고 보조요원은 카메라 조작을 맡는다. 이날 기자가 탑승한 차량 운전은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교통단속을 맡아 왔다는 이병태씨. 보조석엔 공익근무요원이 앉았다.
오후 4시 10분. 1차 목적지는 통신골목이다. 휴대전화 가게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 불법 주·정차가 잦은 곳. 들어서니 곳곳에 차량이 불법 주차해 있다. 세워놓은 차를 지나치자 모니터 속 녹색 표시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변했다. 차량 번호판을 인식하고 사진을 찍었다는 뜻이다. 단속은 차량 주행 중에 이뤄진다. 카메라는 시속 30~40㎞로 달리면서도 번호판을 인식할 수 있다. 찍힌 사진은 곧바로 컴퓨터에 저장된다.
20분 뒤인 오후 4시 30분. 단속차량은 통신골목으로 되돌아갔다. 1차 단속 구간은 6분 이상의 여유를 두고 2차 단속에 들어간다. 여전히 주차 중인 차량이 제법 있다. 2회째 단속된 차량은 화면 아래 상황판에 해당 번호판 구간이 빨간색으로 변했다. 이 차량은 과태료 부과대상이 된다. 승용차는 4만원, 1t 트럭 이상은 5만원이다. 보조요원이 차에서 내려 번호판 가림막을 치웠다. 차를 세워둔 한 차량주가 "금방 세웠는데 찍히는 거 아니죠?"라며 물었다. 이 정도면 약과. "견인만 안 되면 그냥 대겠다"는 사람도 있고 단속되면 육두문자를 퍼붓는 사람도 있다. "젊은 사람일수록 더욱 심하다"는 것이 이씨의 전언.
간선도로의 불법 주·정차 상황은 많이 개선됐다. 그러나 뒷골목길 사정은 악화됐다. 단속차량이 지나는 동안에도 불법 주차 차량은 곳곳에 있었다. 이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걸리면 재수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선진국 수준의 기초질서 의식이 정착되기엔 아직 멀었다"며 한마디했다. 오후 5시. 보조요원이 "적외선 조명을 켜자"고 했다. 밖이 어둑어둑해져 번호판 인식률이 떨어졌기 때문. 보조요원은 부지런히 조도를 조정하며 컴퓨터의 번호판 인식 기능을 최적화하기 위해 애썼다. "야간에는 간판 불빛 때문에 화면이 번져 단속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
오후 5시 30분. 동성로와 국채보상로 일대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단속활동이 끝났다. 오늘 단속실적은 13건. 1회 단속 차량은 188건에 달했다. 중구청의 경우 이동용 단속차량이 하루에 대략 150건을 적발한다. 단속요원은 USB메모리스틱에 기록된 내용을 상황실 컴퓨터로 옮겨 중복 단속이나 실수 등을 걸러낸 뒤 과태료 부과대상 차량을 확정짓는다. 단속부터 차량 소유자가 과태료 통지서를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 4일. 송흥근 중구청 교통지도담당은 "이동식 불법 주·정차 단속시스템 도입으로 주·정차 위반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위반은 여전하다. 운전자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CCTV를 이용한 이동식 불법 주·정차 단속은 효과가 대단하다. 2006년 등장한 지 1년 만에 CCTV(고정식 포함) 단속 건수는 인력 단속 건수를 넘어섰다. 대구의 8개 구·군의 이동식 CCTV 단속 실적은 20만여건에 달한다. 단속 효과가 좋아지면서 각 지자체들이 단속차량 구입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다. 8개 구·군이 현재 운용하고 있는 단속차량은 모두 19대. 중구가 가장 많은 4대, 수성·달서구가 각 3대, 동·서·남·북구가 각 2대, 달성군 1대이다. 단속 편의상 모두 승합차를 개조해 사용 중이다.
달서구의 단속 시스템은 다른 구·군과 다르다. 특별 소프트웨어를 제작 의뢰했다. 기본적인 불법 주·정차 단속은 물론이고 ▷정기검사 이행 여부 ▷책임보험 가입 여부 ▷자동차세 납부 여부 등을 한꺼번에 조회할 수 있는 '동시단속 시스템'이다. 달서구청은 이를 이용해 지난 7월부터 1천여건의 위법차량 번호판을 영치했다. 이승규 교통지도팀장은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속칭 '대포차량'을 없앨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세수 증대에도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 이동식 불법 주·정차 단속차량 내부는?='차량탑재 주행형 불법 주·정차 무인단속 시스템'은 ▷촬영부 ▷인식처리부 ▷조명부 ▷전원부 ▷통신부 ▷기타 장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차량 외부 지붕에는 2대의 카메라가 탑재돼 있다. 한 대는 차량번호 인식용이고 다른 하나는 차량이 주차된 지역이 주차금지구역이란 증거를 담기 위해 더 넓은 배경까지 찍는 배경 영상 촬영용이다. 350도 회전할 수 있는 카메라는 중앙선 너머 반대편 차로의 차량번호판까지 찍을 수 있다. 야간단속용 조명등과 음성안내용 소형 스피커가 2대, 계도용 LED전광판도 있다. 차량 내부에는 영상을 보여주는 LCD모니터 2대와 시스템 제어 컴퓨터가 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는 카메라와 조명 조정기, 무전기가 장착된 차량 탑재형 제어기가 있다. 시스템 전체 가격은 3천만원에 달한다. 운영 소프트웨어 등은 국내업체가 개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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