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9 신춘문예] 단편소설 심사평

신재기(문학평론가·경일대학교 교수)
신재기(문학평론가·경일대학교 교수)
박범신(소설가·명지대학교 교수)
박범신(소설가·명지대학교 교수)

예선을 거쳐 올라온 12편의 작품을 읽은 후 몇 차례 의견을 나누었다. 두 선자가 이견 없이 단번에 뽑을 만한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쉬웠으나, 역량과 노력이 묻어나는 몇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먼저 다섯 작품을 고르고 재독하고 숙의한 끝에 김은아의 '탱고'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실험적이라는 점에서 '비밀 언어 교본'(장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화법이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가는 듯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졌다. 메시지의 울림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상의 형상화보다 화자의 진술에 많은 언어를 쏟아 부어 낭비가 심하다. '오늘밤은 헨리폰다와'(홍은경)는 병들어 죽어가는 시아버지를 며느리인 화자의 눈으로 본다. 요사이 사회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존엄사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주제다. 화자 시선이 화제 외부에만 머물고 있어 서사 진행이 시아버지의 죽음과 화자의 내면의식으로 양분되고 있다. 결과, 주제 내면화에 아쉬움을 남겼다. 낯선 여인의 등장이 모호하게 처리된 점도 흠이다. '고래'(이사과)는 서사를 엮어가는 역량과 공간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제를 암시하는 장치로 마련된 고래와 문신 이야기가 작품 전체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부분들 간의 연결에서도 안정감이 떨어졌다.

'5구역'(김인희)은 서사성 빈약과 환상성 부각이라는 전반적인 경향과는 뚜렷한 거리를 보여주어 관심을 끌었다. 학습지 교사의 틀에 박힌 고단한 일과, 철거를 앞둔 도시 공간의 황폐함과 절망감, 골목의 어둠 속에서 기괴한 눈빛으로 주인공을 쏘아보는 고양이 눈 등이 적절한 배합을 이루었다. 현대인의 황폐한 삶의 현장을 형상화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뒷부분에 이르러 화자는 전반부에 보였던 침착한 시선을 잃는다. 정우 가족 이야기가 이 도시 공간의 전형성을 드러내 준다 하더라도, 학습지 교사 인영과의 관계 설정에서 무리를 드러낸다.

'탱고'는 읽을수록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하는 다성적인 작품으로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존재론적 비애로까지 승격시킨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다. 탱고라는 춤이 가지는 상징성도 잘 살렸다. 탱고 리듬처럼 다양한 삽화를 빠른 호흡으로 병치시키고 있는데, 이 같은 분절된 다양한 이미지 연결은 하이퍼텍스트 방식의 글쓰기라 하겠다. 소재 선택이나 방법에서 소설의 내부 영역을 넓힌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역량을 더욱 정진시키기를 기대하며, 당선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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